
국내 연구진이 전기차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을 미리 탐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센서 기술을 선보였다. 이 기술은 배터리 내부의 이상 신호를 초기 단계에서 포착하여 화재나 폭발 같은 심각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과학기술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과 정현호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부 송영민 교수가 이끄는 공동연구진은 배터리 내부 온도가 위험 단계에 진입하기 이전인 섭씨 80도 미만에서 열폭주 위험성을 즉각 탐지하고 사용자에게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나노광학 온도센서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배터리는 전기자동차, 웨어러블 기기, 도심항공교통 등 첨단 기술 분야의 핵심 동력원이지만, 열폭주 현상으로 인한 화재와 폭발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안전성 확보가 중대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내부 온도가 섭씨 80도를 초과하면 전해질과 분리막 같은 핵심 구성품들이 손상되기 시작하며, 단 1분 내에 온도가 섭씨 500도 이상까지 급상승할 수 있어 온도 변화를 신속히 감지하고 사전 경보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기존 온도 측정 기술들은 여러 제약사항을 가지고 있었다. 열전대 방식은 직접 접촉하는 지점에서만 온도를 측정할 수 있어 전체적인 온도 분포 파악이 곤란했고, 적외선 카메라는 표면 소재의 특성에 따라 측정 정밀도가 좌우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또한 열변색 소재를 이용한 기존 방법들은 반응 속도가 제한적이어서 실시간 모니터링에는 부적합했다.
연구팀은 1960년대에 보고된 단일원소 물질인 텔루륨의 독특한 광학 변조 성질에 착안하여 10나노미터 두께의 텔루륨 극박막을 활용한 열변색 나노광학소자를 개발했다. 텔루륨은 실온에서 섭씨 80도까지 온도가 올라갈 때 고체 상태에서 준액체 상태로 부분적 용융이 일어나며, 가시광선 영역에서 굴절률이 0.7 이상 변화하는 뛰어난 광학변조 특성을 보여 1억분의 1초 수준의 초고속 온도 감지가 가능하다.
연구진은 알루미늄 베이스 배터리 표면에 10나노미터 두께의 극도로 얇은 텔루륨층을 증착하고, 그 상부에 수십 나노미터 두께의 실리카 보호층을 적층하여 온도 변화에 따라 반사광의 색상이 바뀌는 가이레스-토르노이스 공진 구조체를 제작했다. 이 구조체는 비교적 낮은 온도인 섭씨 80도 이하에서도 텔루륨의 고체-준액체 상전이로 인한 광학적 성질 변화를 최대화하며, 실리카 보호막을 통해 외부 환경으로부터 텔루륨을 보호하여 안정성을 보장하도록 설계되었다.
복잡한 전자회로나 추가적인 외부 전력공급 없이 동작하며, 특정 온도에 도달하면 색상이 변화했다가 상온으로 냉각되면 원래 색상으로 복원되는 가역성을 보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제작된 나노광학소자는 실온 25도부터 섭씨 80도까지의 온도 변화를 색상 변화로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으며, 상업용 열전대와 비슷한 수준의 온도 감지 성능을 나타낸다. 더 나아가 17밀리초 간격의 빠른 영상 프레임 속도로 배터리 표면의 온도 분포와 열 전파 과정을 실시간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 또한 수십 차례의 가열-냉각 반복과 주변 습도 변화에도 안정적인 온도 감지 능력을 유지하며, 9개월이 지난 후에도 열변색 특성이 보존되는 우수한 내구성을 입증했다.
연구팀은 개발한 나노광학소자를 시중의 18650 배터리와 스마트폰에 적용하여 충전 및 방전 중 발생하는 발열 현상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실용화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 광학소자는 배터리 셀 표면에 직접 증착하거나 테이프로 간편하게 부착할 수 있어 산업 현장 적용이 용이하며, 전문 장비나 분석 전문가 없이도 스마트폰이나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누구나 손쉽게 배터리 온도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 상용화 전망이 밝다.
정현호 교수는 "텔루륨의 광변조 특성과 나노포토닉스 기술을 융합하여 배터리 폭발 위험을 사전에 경고할 수 있는 핵심기술을 확보했다"면서 "앞으로 전기자동차, 항공, 우주, 소방, 웨어러블 기기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송영민 교수는 "최근 국내외적으로 배터리 화재 사고가 빈발하면서 안전성 확보가 핵심 과제로 대두되었다"며 "이번 기술이 차세대 배터리 안전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사회적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우수신진연구사업, 미래기술연구실사업 및 GIST-MIT AI국제협력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되었으며, 재료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즈'에 지난 7월 23일자로 온라인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