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연구진이 주도하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가 메시에87(M87) 은하 중심부 거대질량 블랙홀 주변에서 전례 없는 자기장 변동을 발견했다. 2017년 첫 촬영 이후 불과 4년 간격으로 자기장 회전 방향이 완전히 뒤바뀌는 현상이 확인되어 블랙홀 근처 물질들의 극도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최초로 입증되었다.
우주항공청과 한국천문연구원은 사건지평선망원경(EHT) 대규모 국제 협력을 통해 M87 은하의 거대질량 블랙홀에서 그림자와 광고리 구조의 시간별 변화 분석을 완료했다고 16일 발표했다. 이번 성과에는 천문연구원,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경희대학교 등 국내 기관들이 핵심 역할을 담당했으며,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천문학과 천체물리학' 9월호에 게재되었다.
지구에서 약 5500만 광년 거리에 위치한 처녀자리 은하단의 거대 타원은하 M87은 2017년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영상화된 블랙홀의 소재지다. EHT는 전 지구에 분산된 전파망원경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지구 규모의 가상망원경을 구축하는 국제 협력 사업으로, 블랙홀의 사건지평선(내부 현상이 외부로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경계영역)까지 관측 가능한 초정밀 영상을 제공한다.
연구진은 2017년, 2018년, 2021년의 관측 데이터를 종합 분석하여 특별히 블랙홀 주변 자기장 패턴의 변화에 집중했다. 독자적으로 개발한 분석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한 결과, 블랙홀 중앙의 어두운 그림자 영역과 주변 광고리의 크기는 동일하게 유지되었으나, 광고리가 가리키는 방향성에서 상당한 변화가 관측되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2021년 관측에서 블랙홀 주변 자기장의 회전 방향이 2017년과 정확히 반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이는 단 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완전한 방향 전환이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김재영 UNIST 물리학과 교수는 "사건지평선 인근에서 초고온·초고압 플라스마가 순간적으로 블랙홀로 빨려들거나 방출되면서 주변 환경을 격렬하게 교란시켜 편광(특정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빛) 변화를 야기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러한 현상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모델을 뛰어넘는 더욱 정교한 연구가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미하일 얀센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재확인함과 동시에 예상하지 못했던 복잡한 자기장 구조가 밝혀졌다"고 평가했다.
EHT 프로젝트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매년 M87 블랙홀을 지속 관측하며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창출하고 있다. 2026년에는 세계 최초로 블랙홀의 단기적 변화를 포착한 동영상 제작 프로젝트가 시작될 예정이다. 현재 연 1장 수준의 이미지 획득에서 2026년에는 3개월 동안 격주로 촬영하여 동영상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천문연구원이 운용하는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도 이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한다.
김재영 교수는 "EHT 연구단이 매년 망원경 확대와 장비 개선, 혁신적인 알고리즘 개발을 통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며 "향후에는 우주-지상, 지상-달 표면을 연결하는 전파망원경 네트워크로 더욱 멀리 떨어진 블랙홀들의 영상화에 도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봉원 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이번 성과를 포함한 핵심 연구들을 국내 젊은 연구자들이 선도하고 있으며, 차세대 핵심 기술 개발도 우리나라가 주도하고 있어 EHT 블랙홀 연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중심 국가라고 자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경인 우주항공청 우주과학탐사부문장은 "이번 성과는 블랙홀이라는 우주의 극한 환경을 이해하는 데 한 발자국 더 접근한 중요한 결과"라며 "앞으로도 세계 수준의 우주 관측 연구를 통해 인류의 지식 영역을 확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