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배터리 산업계가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 공세와 전기차 수요 둔화라는 이중고 속에서 생존을 위한 정부 지원책 마련을 간절히 요청하고 나섰다. 특히 기업의 영업손익과 관계없이 투자액에 대해 현금 환급이 가능한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제도 신설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연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배터리산업협회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공동 개최한 '글로벌 배터리 시장 변화와 K-배터리 산업 경쟁력 확보 국회토론회'에서는 업계 전반의 위기감이 그대로 드러났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연이은 적자로 기존 투자세액공제 혜택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세호 LG경영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발제를 통해 "배터리 산업 경쟁 양상이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국가 차원의 시스템 대결로 패러다임이 전환됐다"고 진단했다. 중국이 자국 기업에 제공하는 산업 지원금이 한국의 25배 수준인 2480억 달러에 달한다며, 이로 인해 중국 기업들이 원자재 저가 확보와 대규모 설비 구축을 통해 공급망 안정성과 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점유율은 2011년 44%에서 작년 19%로 급격히 하락한 상태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은 경쟁국 대비 높은 전력료와 자원 부족으로 구조적 불리함을 안고 있으며, 전기차나 에너지저장장치 수요 촉진을 위한 보조금 정책도 미흡하다"며 한국 기업이 공정한 경쟁 환경에서 벗어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안정혜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두 번째 발제에서 직접환급형 세액공제의 구체적 장점을 제시했다. 이 제도는 기업이 생산이나 투자 실적을 달성할 때 납부할 법인세 유무와 상관없이 세액공제분을 현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는 방식이다. 안 변호사는 "미국, 캐나다, 유럽연합, 중국 등이 이미 유사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기업은 명확한 투자수익률 계산을 통해 장기 투자계획 수립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현행 제도의 한계도 지적됐다. 현재 투자세액공제는 법인세 납부분에서 차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어 적자 기업은 흑자 전환 시까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반면 직접환급형은 투자나 생산 조건 충족 시 즉시 현금 지원이 가능해 기업의 유동성 확보에 직접적 도움을 준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패널 토론에 나선 기업 관계자들은 절박한 현실을 호소했다. 김우섭 LG에너지솔루션 전무는 "배터리 업계만 유독 수익을 내지 못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역차별 상황"이라며 "지원이 필요한 산업임에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소외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노명호 삼성SDI 그룹장은 "중국의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은 기업들과 불공정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김동현 SK온 팀장은 "직접환급이 어렵다면 세액공제 크레딧의 제3자 양도나 정책자금 이자 상환 용도로라도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며 대안책을 제시했다. 최우영 에코프로 실장은 "미국처럼 기업들이 생산 또는 투자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자율성을 부여하고, 수출 물량도 지원 범위에 포함해야 제도 실효성을 높일 수 있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박재정 산업통상자원부 배터리전기전자과장은 "정부도 최대한 지원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보조금과 세액공제 방식 사이에서 검토 중"이라며 "이달이나 다음 달 중 관련 대책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현원석 기획재정부 조세특례제도과 사무관은 "세수 건전성과 타 업계 지원 요구 등을 종합 고려해 내부 검토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정부와 국회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관련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제기된 직접환급형 세액공제 논의가 더 이상 지체될 경우 한국 배터리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회복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