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통상자원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아세안 경제장관회의 참석차 23일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며 미국과의 관세 후속협상에서 "국내 기업들의 어려움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 본부장은 출국 전 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나 "반도체, 철강 등 다양한 품목 관세와 관련한 우리 기업들의 곤란은 정부가 충분히 파악하고 있다"며 "그리어 대표와 다자 협의 논의를 진행하며 한미 현안도 다룰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말레이시아 방문에서 여 본부장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할 예정이다.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은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여 본부장이 워싱턴을 방문해 그리어 대표와 협상한 지 일주일여 만이다.
양국은 지난 7월 말 관세협상을 타결하며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고, 우리나라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실시하는 내용에 합의했다. 하지만 투자 방식과 수익 분배 등 세부 이행방안에 대한 의견 차이로 후속협상이 두 달 가까이 표류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일본과 같은 방식으로 지분투자 형태로 달러 현금을 받아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하고,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조건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대규모 외화 유출에 따른 외환시장 혼란을 우려해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을 안전장치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앞서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고 미국이 투자 결정권을 갖는 내용의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이로써 일본은 16일부터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낮춰 한국보다 10%포인트 낮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22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이 요구하는 방식으로 3500억달러를 전액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한 바 있다.
여 본부장은 통화스와프 문제와 관련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최대한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상업적 합리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설득 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대한 상호 호혜적으로 국익을 최우선에 두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아세안 경제장관회의는 다음달 아세안 정상회의에 앞서 아세안 10개국과 주요 협력국 경제·통상 장관들이 경제분야 의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우리나라는 한-아세안, 아세안+3, 동아시아정상회의 경제장관회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장관회의에 참석해 디지털 전환, 공급망, 기후변화 등 역내 경제·통상 분야 협력방안을 모색한다.
여 본부장은 회의 기간 그리어 대표를 포함해 유럽연합, 호주, 뉴질랜드, 싱가포르 등과 양자 면담을 추진하며 수출 지역 다변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