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법안, 우리사주조합 출연분은 예외 허용키로

2025.09.15
자사주 소각 의무화법안, 우리사주조합 출연분은 예외 허용키로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3차 상법 개정법안의 연말 처리를 추진하면서, 우리사주조합 출연 목적의 자사주 보유는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14일 확인됐다. 이는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 우려를 완화하면서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활용되던 관행은 차단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자기주식 소각을 원칙적으로 의무화하되 우리사주조합 등에 대한 출연을 위한 자기주식 보유는 허용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악성 투기성 자본 등으로부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종업원들의 힘을 빌리는 것까지는 인정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법안에 따르면, 회사가 취득한 자기주식을 원칙적으로 1년 내 소각하되 정기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우리사주조합 출연, 사내근로복지기금 출연 등을 위한 보유는 예외적으로 허용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민병덕 의원안은 자기주식 총수가 발행주식의 3% 미만일 경우 2년까지 유예를 두고 있으며,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취득 후 6개월 내 소각으로 더욱 강화된 규정을 제시했다.

정부·여당이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를 추진하는 배경에는 주식시장에서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의지가 깔려있다. 기업들이 자기주식을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 등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가로막아 주가 저평가를 야기했다는 판단에서다. 해외 기관투자자들은 한국에서 자기주식이 주주가치 제고보다는 대주주의 비상금처럼 활용되고 있다며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왔다.

실제로 2003년 소버린의 SK 공격이나 2015년 엘리엇의 삼성 공격 당시 자기주식은 경영권 방어의 핵심 역할을 했다. SK는 보유 중인 자기주식 10.41%를 하나은행·신한은행 등에 매각해 우호 지분을 형성했고, 삼성물산도 자기주식 5.76%를 KCC에 매각하며 경영권을 지켰다.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이지만 해외에서는 '모든 주주가 동일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주평등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법안 통과를 앞두고 기업들의 선제적 대응도 활발하다. 올해 1~8월 자기주식을 소각한 기업은 206곳으로 이미 지난해 연간 기록(177곳)을 넘어섰고, 소각액도 5619억원으로 전년(4809억원)을 상회했다. 반면 일부 기업들은 자기주식을 활용한 교환사채(EB) 발행에 나서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달 들어서만 18곳이 자기주식 기반 교환사채 발행을 공시했는데, 이는 작년 동기간 1건과 대비된다.

재계에서는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경영권 안전장치가 사라지고, 자기주식 담보 자금조달이 막히며, 여력이 적은 중견·중소기업에게는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소각이 의무화되면 기업이 굳이 자기주식을 사들일 이유가 없어져 유통주식 수가 늘어나고 주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주요국들의 사례를 보면 미국과 영국, 일본은 자기주식 소각을 법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독일만이 자기주식 보유 비율을 자본금의 10%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할 경우 3년 내 소각을 의무화하고 있다. 다만 이들 국가는 자기주식 매입 과정에서의 시세 조종 방지와 처분 시 제약을 두어 지배구조 왜곡을 막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전날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상법 개정이 기업을 옥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부당하고 악덕한 일부 지배 주주를 압박하겠다는 것"이라며 "주가가 제대로 평가받게 상법을 개정해 경영 풍토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당은 재계 우려를 달래기 위해 상법상 특별배임죄 폐지와 형법상 배임죄에 대한 경영판단 면책 원칙 명문화 등의 입법도 병행 추진 중이다.

그러나 민주당 내부에서도 법안 세부내용을 놓고 이견이 있어 실제 입법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는 소각 의무화를 주장하지만 적지 않은 의원들이 처분 공정화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당내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