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회 대구퀴어문화축제가 경찰과 반대 집회 측과의 마찰 없이 순조롭게 막을 내렸다. 축제는 개최 직전까지 이어진 법적 공방으로 인해 장소를 변경해야 했지만, 참가자들은 성소수자 인권 보호 의지를 당당히 드러냈다.
행사는 20일 정오부터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에서 시작됐다. 당초 대중교통전용지구에서 열리려던 계획이 경찰의 차로 제한 통보로 무산되면서, 조직위원회는 전날 긴급히 중앙네거리에서 공평네거리까지 약 500미터 구간으로 행사장을 옮겼다. 2·28기념중앙공원 앞 버스정류장 인근에 설치된 메인 무대 주변으로 수십 개의 텐트가 들어섰다.
오전에 내린 비로 인해 부스 설치 작업이 1시간가량 늦어졌으나 예정된 시각에 맞춰 행사가 개막했다. 축제 관계자는 "17년간 이어온 대구 퀴어문화축제를 위해 1년 중 단 하루를 준비하며 국가 권력과 대치하고 시민들을 설득해왔다"면서 "계획했던 공간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해 안전하고 즐거운 축제가 되도록 노력했다"고 밝혔다.
같은 날 오후 2시경부터는 반월당역 인근 달구벌대로에서 기독교 단체들이 주도하는 퀴어축제 반대 집회가 진행됐다. 두 행사장은 직선거리로 약 700미터 떨어져 있어 직접적인 대면은 피할 수 있었다. 오후 3시 40분쯤 반대 집회 참가자 70여 명이 축제 현장 근처 인도로 이동해 피켓 시위를 벌였으나, 경찰의 통제로 큰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날 축제에는 주최 측 추산 2천여 명이 참여했으며, 반대 집회에는 약 3천여 명이 모인 것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840여 명의 인력과 순찰차, 사이드카 44대를 배치해 양측 집회의 안전한 진행을 도왔다. 편도 4차로 중 3개 차로가 통제되면서 인근을 지나는 차량들이 한 차로에 몰려 서행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운전자들과 행사 참가자 간 큰 마찰은 없었다.
배진교 조직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우리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더 큰 여정의 시작"이라며 "끝까지 자긍심 넘치는 행진을 이어가자"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축제는 오후 5시부터 약 1시간 동안 동성로 도심을 한 바퀴 도는 퍼레이드로 대미를 장식했다.
한편 조직위는 경찰의 집회 제한 통고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대구지법에 의해 기각되자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인권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가기관의 탄압에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내년에도 축제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