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 2부는 25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국장 석모(54)씨에 대해 징역 9년6개월과 자격정지 9년6개월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주심 오경미 대법관이 이끄는 재판부는 "원심 판단에 논리와 경험 법칙 위반이나 법리 오해 등의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석씨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5년여 기간 동안 총 102회에 걸쳐 대남공작기구인 북한 문화교류국으로부터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을 펼친 혐의를 받았다. 그는 중국과 캄보디아 등 해외 지역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직접 접촉하며 노동조합 활동을 가장해 정보를 수집하고 전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함께 기소된 전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 김모(50)씨 역시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년이 최종 결정됐다. 반면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 양모(56)씨와 모 연맹 조직부장 신모(52)씨는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수사기관들이 확보한 증거는 역대 국가보안법 사건 중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민주노총 사무실과 석씨 거주지 압수수색을 통해 북한 지령문 90건, 대북 보고문 24건, 암호 해독 키 등이 발견됐다. 석씨가 북한에 제공한 정보에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 관련 계파 동향,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의 군사시설 현황 등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1심 재판부는 당초 석씨에게 징역 15년 실형을 선고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중대한 범죄행위"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2심에서는 형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민주노총이 석씨가 만든 비밀조직에 완전히 장악당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감형 사유를 설명했다.
특히 2심은 1심이 인정했던 '지사'라는 비밀조직의 실체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렸다. "특정 다수가 공동목적으로 위계질서와 통솔체계를 갖춘 조직적 요건을 인정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비밀조직 존재와 무관하게 개인 차원의 간첩행위는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석씨의 행위에 대해 "단순한 개인 일탈 수준을 넘어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고 사회 혼란을 야기해 국가 존립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중범죄"라고 평가했다. 다만 수집된 군사기밀이 실제로 북한에 전달됐다는 직접적 증거는 없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현재도 북한의 대남 침투공작이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검찰은 석씨 등이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후 민주노총 내부에 침투 기반을 구축했다고 판단했으며, 이들의 활동이 장기간에 걸쳐 은밀하고 체계적으로 진행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