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지시간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개막한 제80차 유엔총회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한 거대한 비판의 장으로 전개됐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며 유엔의 무능함을 신랄하게 조롱한 트럼프 대통령과 다자주의 질서를 옹호하는 각국 정상들 간의 날선 대립이 총회장을 지배했다.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총회 첫 번째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최근 브라질에 50% 폭탄관세를 부과하고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석방을 압박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우리 정부기관과 경제체제에 대한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조치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전 세계 독재 지망생들과 그들의 추종세력에게 분명히 말한다. 우리의 민주체제와 국가주권은 협상이나 양보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비판의 목소리도 거셌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현장 사진을 직접 들어 보이며 "가자에는 첨단 살상장비로 무장한 정규군이 한쪽에 있고, 죄 없는 민간인과 어린이들이 다른 쪽에 있다"며 즉각적인 휴전을 촉구했다.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가자지구에서 지속되는 참상을 무거운 심정으로 바라본다"며 단상을 연거푸 내리치면서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2만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 파견 의지를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승인하는 그날, 인도네시아 역시 이스라엘을 공식 인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BFM TV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욕심을 직격했다. "현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인물은 미국 대통령 단 한 명뿐"이라며 "가자지구 분쟁을 종료시켜야만 노벨평화상 수상이 가능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뉴욕 시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차량행렬로 인해 교통체증에 발목이 잡히자 직접 전화를 걸어 "지금 도로에서 대기 중이다. 당신 탓에 모든 길이 막혔다"고 비꼬기도 했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은 미국이 마약 단속 명목으로 카리브해 선박들을 격침시킨 사건을 거론하며 "형사적 수사절차가 개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격침 명령을 내린 트럼프 대통령이 수사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희생자들은 마약밀매조직원이 아니라 다른 대안이 없었던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청년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도입부에서 "프롬프터 없이 연설하게 됐다.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운을 떼며 유엔 시설의 비효율성을 조롱했다. 그는 "취임 후 7개 전쟁을 종료시켰지만 유엔으로부터는 통화 한 건도 받지 못했다"며 "유엔에서 받은 것은 중간에 멈춘 에스컬레이터와 고장난 프롬프터가 전부"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현재 세계는 무분별한 파괴행위와 끝없는 인간 고통의 시대에 진입했다"며 "평화와 분쟁, 법치와 무법, 협력과 대립이 복잡하게 얽혀있다"고 우회적으로 현 상황을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