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연합(UN) 산하 독립국제조사위원회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대량학살)를 저질렀다는 공식 판단을 내렸다. 16일(현지시각) 발표된 72쪽 분량의 보고서는 유엔 기관이 이스라엘의 집단살해 행위를 공식 인정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조사위원회는 1948년 채택된 집단살해 방지협약에서 명시한 5개 제노사이드 행위 중 4개를 이스라엘이 2023년 10월 전쟁 개시 이후 가자지구에서 실행했다고 결론지었다. 해당 행위는 팔레스타인 주민 살해,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위해 가하기, 집단 전멸을 목적으로 한 생활여건 강요, 출산 억제 조치 등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의료진, 언론인, 구호활동가를 포함한 민간인을 직접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다. 안전구역으로 지정된 곳과 대피경로에서도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살해됐으며, 심지어 항복의 표시로 백기를 든 주민들까지 사살됐다고 명시했다. 유아를 포함한 어린이들에게 머리를 겨냥한 저격까지 자행됐다는 충격적인 내용도 포함됐다.
조사위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완전 봉쇄하고 물, 식량, 전력, 연료 등 생존 필수품 공급을 차단해 주민들을 기아상태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의료시설과 교육기관, 종교시설에 대한 체계적 파괴도 집단살해의 증거로 제시됐다. 특히 2023년 12월 가자지구 최대 생식의료센터를 공격해 4천여 개의 배아와 1천여 개의 정자·난자 샘플을 파괴한 행위는 출산 방해 조치로 규정됐다.
나비 필레이 조사위원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 이츠하크 헤르조그 대통령,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집단살해를 선동했다고 명시했다. 이들 지도자들의 공식 성명과 이스라엘군의 작전 방식을 분석한 결과, 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주민을 파괴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확인됐다고 밝혔다.
조사위원회는 국제사회에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각국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장비 이전을 중단하고, 집단살해에 가담한 개인과 기업을 조사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주도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가자 인도주의 재단의 활동도 즉시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필레이 위원장은 "집단살해의 명확한 징후와 증거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이를 저지하기 위한 행동의 부재는 공모에 해당한다"며 "매일 지체될 때마다 생명이 사라지고 국제공동체의 신뢰가 무너진다"고 경고했다. 그는 모든 국가가 가자지구에서의 집단살해를 막기 위해 합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무부는 "왜곡되고 허위인 보고서를 단호히 거부한다"며 조사위원회의 즉각 해체를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 측은 조사위원들이 하마스의 거짓 정보에 의존했으며 반유대주의적 편견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1일 세계 최대 규모의 집단살해 전문가 모임인 국제집단살해학자협회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살해를 확인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다. 이번 유엔 조사위 보고서는 국제형사재판소와 국제사법재판소의 향후 판단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