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간 관세 협상이 장기 교착상태에 빠진 가운데,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가 22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에서 공동 주최한 '관세협상 이후 한·미 산업협력 윈-윈 전략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이 새로운 협상 아이디어들을 쏟아냈다.
이날 행사에는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혜민 한국외대 초빙교수(前 한미 FTA 기획단장),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허정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장) 등 산업계 및 학계 전문가 80여 명이 참석했다.
허정 서강대 교수는 "일본의 9대1 수익배분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며 "한국은 30여년간 쌓인 대미투자 기득권을 지키려는 일본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본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미국 현지 고용창출과 부품공급 등의 성과에 따라 추가 수익률을 확보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예를 들어 고용 1천명 달성시마다 자동으로 2%포인트의 추가 수익률을 보장받는 구조다.
또한 총 투자 규모의 5-10%를 연구개발 목적으로 별도 배정하여 미국 에너지부(DOE)나 국립표준기술연구소(NIST) 프로그램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여기서 나오는 지식재산권을 양국이 함께 보유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의 경제주권 확보를 위한 정치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보호무역주의가 향후 20년 이상 계속될 것"이라며 "대규모 대미투자를 조건으로 우호적 투자수익 분배, 전문직 비자 개선 및 고용안정화, 투자 세액공제 확대, 방위비 분담금 비율 고정 등 통상·외교·안보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거래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미국 내 사업장에서 국내 전문인력을 원활히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의 중요성도 부각됐다. 허 교수는 "비자 발급 제약으로 인한 숙련인력 조달 문제가 심각하다"며 "생산시설의 효율적 운영과 기술보안을 위해 관리자나 기술자 파견이 필수적이지만, 특히 중소기업들은 할당제한이 있는 H-1B 전문직 비자에 의존하고 있어 안정적 인력확보가 곤란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추첨방식으로 발급되는 H-1B 비자의 경쟁률은 약 5.5대1 수준이며, 한국인 취득 건수는 연간 2천여 건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의 경우 L-1 주재원 비자나 E-2 투자 비자 취득이 까다로워 H-1B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H-1B 비자 우선배정 추진 △호주 모델과 같은 한국인 전용 취업비자(E-4) 도입 △최소 6개월이 소요되는 L-1, H-1B 등의 신속 심사체계 구축 등이 제시됐다.
산업공동화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됐다. 이혜민 교수는 "관세회피만을 목적으로 한 중소기업의 무분별한 미국 진출은 위험부담이 크다"며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상호관세 적용 대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내기업들의 유턴을 검토하고 정부가 이를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주홍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무는 "주요국들의 자국보호주의 심화로 해외생산이 늘어나면서 국내 제조업 기반 약화가 우려된다"며 "국가전략기술 관련 제품의 국내생산 장려를 위한 세제혜택 신설로 국내 생산기반을 유지·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최종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상무는 "마더팩토리 전략으로 K-배터리의 근본적 경쟁우위를 보존하고 강화해야 한다"며 첨단전략산업의 국내생산 촉진 세제혜택, 기술격차 유지를 위한 연구개발 투자 증대, 대미투자 공장 건설장비 및 생산원료의 관세감면 등 정부의 전략적 지원방안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비자 문제와 관련해 각 업계도 목소리를 높였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전무는 "미국 조선소 현대화와 전문인력 육성을 위해서는 국내 숙련인력의 파견이 불가피하다"며 "양국 간 긴밀한 협의를 통한 비자제도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미국 내 한국인 파견과 고용 없이는 반도체 투자와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하며 이는 미국 측도 원치 않을 것"이라며 "최근 한국인 근로자 구금사건이 미국인 고용 압박을 위한 조치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단기간 내 숙련된 현지인력 확보는 어렵고 한국인력의 대체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중경 한미협회 회장은 "한쪽의 이익만을 내세우는 협력방식은 장기적으로 양국 모두에게 손해"라며 "균형잡힌 협상과 상호보완적 협력을 통해 실질적이고 지속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