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사당국이 압수한 휴대전화에서 모든 데이터를 선별 없이 추출한 후 다른 사건의 혐의를 발견해 수사를 진행하는 것은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되는 위법한 압수행위라는 최고법원 판단이 내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최근 공무상비밀누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예비역 중령 A씨에 대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환송했다고 19일 밝혔다.
공군 법무관 출신인 A씨는 2018년 6월부터 8월 사이 전역을 앞두고 민간 취업 준비 과정에서 직무상 기밀이 담긴 국방관련 계획서류를 작성하여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들과 검찰 관계자들에게 여러 차례 전송한 혐의를 받았다. 그는 로펌 입사를 목적으로 이러한 범행을 저질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사안은 당초 국군기무사령부 내란음모 사건을 조사하던 특별수사단이 참고인 지위에 있던 A씨의 모바일 기기를 압수하여 분석하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포렌식 담당 수사관은 A씨의 스마트폰을 복제한 뒤 저장된 모든 데이터를 엑셀 형태로 변환하여 군 검사에게 제공했다. 군 검사가 이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군사기밀 유출과 연관된 혐의점들을 포착하게 된 것이다.
이후 수사관은 해당 복제본을 별도 저장매체로 이관했으며, 군 검찰은 군사법원으로부터 이 저장매체에 대한 새로운 압수영장을 발급받았다. 1심과 2심 군사법원은 해당 혐의 중 일부를 유죄로 판정하여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최고법원은 군 검찰의 증거 확보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최초 영장 발부 근거가 된 혐의와는 전혀 무관한 참고인 신분이었으며 영장 집행 당시 피고인을 대상으로 한 별도 수사가 진행되지 않았던 상황"이라며 "모바일 기기에서 해당 전자정보가 발견됨으로써 처음으로 피고인의 다른 혐의에 관한 수사가 시작되었다고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고법원은 또한 "수사기관의 디지털 정보에 대한 압수수색은 원칙상 영장 발부 근거가 된 범죄 혐의와 연관된 부분에 한정하여 문서 출력이나 저장매체 복제 방식으로 실시되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인용했다. 이어 "수사기관 내부로 반출된 저장매체나 복제본에서 혐의 관련성을 구분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보관된 전자정보를 문서화하거나 파일로 복사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영장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불법적인 압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스마트폰에는 개인 사생활과 관련된 광범위한 정보가 축적되어 있어 제한 없는 압수수색으로 인한 기본권 침해 수준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A씨는 최초 사건의 피의자도 아니었는데, 이런 경우 포렌식 수사관은 압수수색 초기부터 영장에 명시된 범죄사실과 관련된 범위로 탐색 및 추출 대상을 한정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했으나 무차별적인 다른 사건 수사를 차단하기 위한 그 어떤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최고법원은 "불법수집증거인 해당 전자정보를 바탕으로 확보된 증거들 역시 위법수집증거에 근거해 획득한 2차적 증거로서 이번 압수 절차와 2차적 증거 수집 사이의 인과관계가 희석되거나 단절되었다고 볼 수 없으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