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만은 더 이상 단순한 외모 문제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는 비만을 "과도한 지방 축적으로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질환"으로 정의하며, 국내외 의학계도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신진영 교수는 "비만은 200여 가지 합병증을 야기하고 생존과 직결되는 의학적 치료 대상"이라고 강조했다.
비만도가 높아질수록 건강 위험성도 급격히 증가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만은 제2형 당뇨병 발병 위험을 9.5배, 고혈압을 5.2배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도비만(BMI 35 이상)의 경우 신장암 위험이 2.99배, 간암은 2.23배, 대장암은 1.3배 증가한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280만 명이 비만 관련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으며, 심혈관계 질환과 암, 당뇨 등으로 인한 사망자는 500만 명에 이른다.
최근 의료계의 주목을 받는 것은 GLP-1 수용체 작용제 계열 약물이다. '인크레틴' 기반 치료제로 불리는 이 약물은 식욕 억제와 위 배출 지연을 통해 포만감을 늘려 체중 감소 효과를 나타낸다. 당초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됐지만, 뛰어난 체중 감량 효과가 입증되면서 고도비만 치료 영역으로 확대됐다.
신 교수는 "GLP-1 계열 약물은 현재까지 개발된 비만치료제 중 가장 우수한 감량 효과를 보인다"면서도 "만능 다이어트 약이 아니며 엄격한 사용 기준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약물은 BMI 30 이상이거나, BMI 27 이상이면서 고혈압, 당뇨병전단계, 이상지질혈증, 지방간질환, 폐쇄수면무호흡 등 동반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처방이 권장된다.
하지만 GLP-1 단일 기전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그로쓰리서치에 따르면 이 약물은 지방뿐만 아니라 근육까지 손실시키는 부작용을 보이며, 감량된 체중의 최대 40%가 근육 손실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이로 인해 기초대사량이 급격히 떨어지고 일정 시점부터 감량이 정체되는 '플래토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반복 투여 시 내성이 생겨 효과가 점차 약화되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제약업계는 '멀티호르몬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GIP(위 억제 펩타이드), 아밀린, 글루카곤 등 다양한 호르몬을 병용해 GLP-1 단독 기전의 단점을 보완하는 연구가 활발하다.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는 GLP-1과 GIP 이중 작용제로 기존 약물 대비 6-7%포인트 높은 체중 감소율을 보였으며, 치료 중단률은 오히려 낮아졌다.
한편 GLP-1 약물의 적응증도 확대되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는 심혈관계 질환 예방 목적으로 추가 승인을 받았으며,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 치료제로도 허가됐다. 일라이 릴리의 '마운자로'는 수면무호흡증 치료제로 승인받는 등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전신 질환 관리의 새로운 표준으로 진화하고 있다. 알츠하이머 치료 영역에서도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며, 최근 연구에서는 암 발병 위험을 17% 낮춘다는 결과도 나왔다.
차세대 비만 치료제 개발도 가속화되고 있다. 월 1회 또는 분기 1회 투여하는 장기지속형 주사제, 먹는 제형, 붙이는 패치형 등 다양한 제형 혁신이 진행되고 있다. 암젠의 '마리타이드'는 월 1회 투여로 최대 20%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으며, 일라이 릴리는 하루 한 번 복용하는 '오포글리프론' 개발을 완료했다. 국내 기업들도 유노비아의 먹는 GLP-1 치료제, 대웅제약의 마이크로니들 패치 등 혁신적 제형 개발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비만치료제의 오남용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의료기관과 약국에 협조 공문을 보내 허가 범위 준수를 당부했다. 정상 체중자까지 처방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비대면 진료 확산으로 검증 절차가 느슨해진 것이 문제로 지적된다. 국내 비만치료제 시장은 올해 1분기 전년 동기 대비 162% 증가한 1086억 원 규모로 급성장했다.
전문가들은 비만치료제가 근본 치료법이 아닌 보조 수단임을 강조한다. 신 교수는 "비만의 원인은 유전, 호르몬, 식습관, 정신건강 등 복합적이기 때문에 약물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며 "식사요법, 운동요법, 행동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약물 투여 후에도 생활습관 개선 없이는 체중이 원래대로 돌아오거나 더 증가할 수 있어 종합적 치료계획이 필수적이다.
비만치료제는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설사, 변비 등 위장관 부작용이 흔하며, 드물게 췌장염 등 중대한 이상반응도 보고되고 있다. 따라서 반드시 의료진의 정확한 진단과 처방 하에 사용해야 하며, 지속적인 부작용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유행하는 다이어트 방법보다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체계적 접근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비만 치료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