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전 장관 "윤석열이 2023년 9월 대사직 먼저 제안" 특검 진술

2025.09.22
이종섭 전 장관 "윤석열이 2023년 9월 대사직 먼저 제안" 특검 진술

해병대 채상병 순직사건 수사외압 논란의 중심인물인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이 최근 이명현 특별검사팀 조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9월 중순 대통령 관저에서 대사나 특사직 파견을 먼저 언급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는 채상병 사건 발생 2개월 후로 외압 관련 논란이 격화되며 야당에서 이 전 장관 탄핵을 추진하던 시점이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을 실질적으로 대사 등 자리를 제공해 해외로 피하게 하려던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22일 관련 취재결과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최근 특검팀에서 '호주대사 도피성 임명 논란'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으면서 '2023년 9월 중순 대통령 관저에서 윤 전 대통령이 먼저 대사나 특사 파견 가능성을 거론했다'는 내용으로 진술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대사직 임명 가능성을 언급한 시점에 주목한다. 소위 'VIP(윤 전 대통령) 분노' 등 채상병 사건 관련 논란이 증폭되면서 야당 중심 정치권의 공세가 강화되자 윤 전 대통령이 먼저 '대사직 파견'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국회는 2023년 8월21일 국방위원회에서 이 전 장관에게 VIP 분노설을 포함한 채상병 사건 관련 논란을 추궁했다. 같은 해 9월5일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이 전 장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엿새 뒤에는 이 전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방침을 발표했다. 이 전 장관은 바로 다음날인 2023년 9월12일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표했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의 의향에 따라 청와대, 안보실, 외교부 등이 이 전 장관에 대한 주호주대사 임명 절차를 무리하게 추진했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수사 중이다. 이 전 장관이 장관직을 그만둔 다음날(2023년 9월13일) 일부 언론은 청와대 관계자와의 통화 내용을 인용해 그가 방산 수요가 많은 국가에 대사나 대통령 특사로 파견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윤 전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대화는 이 보도 이후인 9월 중순에 있었다.

그간 특검은 외교부 실무 관계자들을 조사해 이 전 장관 인사검증 절차가 성급하게 진행됐다는 내용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어 이 전 장관 장관의 '귀국 명분용'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지난해 3월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 회의'가 통상 절차와 달리 "국가안보실이 주도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특검은 조만간 장호진 전 안보실장 등에 대한 조사를 통해 안보실이 방산공관장 회의를 개최한 이유 등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이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의 발언이 '장관 사임 의사를 밝힌 자신에 대한 덕담' 정도에 불과했다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공수처 수사가 본격화되지 않아 '도피성 임명'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전 장관은 2023년 12월 외교부로부터 주호주사대사 임명에 관한 인사검증 절차를 안내받은 뒤에야 실제 대사직 파견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 측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2023년 9월에는 공수처 수사가 진행된 게 전혀 없었을 무렵"이라며 "이 전 장관 수사가 가시화되지도 않았던 시기의 사안인 주호주대사 임명 건을 수사 회피, 혹은 도피성으로 묶는 것은 무리한 시각"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공수처가 이 전 장관 조사 없이 출국금지만 해놨기 때문에 법무부에서도 출국금지 조치가 해제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번주 이 전 장관 출국금지 해제 및 대사 부임 과정에 관여한 윤석열 정부 당시 외교부·법무부 관계자들을 잇달아 소환한다. 특히 이 전 장관이 참고인 진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먼저 대사나 특사를 제안했다는 내용으로 진술한 것으로 파악되면서, 장·차관을 넘어 윤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정민영 특검보는 이날 특검 정례브리핑에서 오는 23일 오전 10시 박진 전 외교부 장관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이 전 장관에 대한 인사 검증이 2023년 12월부터 진행됐고, 박 전 장관이 지난해 1월까지 장관직을 수행했으므로 호주대사 임명 결정과 인사 검증 과정에서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이 보고 받거나 지시한 것을 조사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오는 23일과 24일에는 이노공 전 법무부 차관과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한다.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피하도록 도운 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 도피 당사자인 이 전 장관은 지난 17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이 전 장관은 12시간가량 특검 조사가 끝난 뒤 취재진에게 '범인 도피 없었다, 출국금지 사실 몰랐다는 입장은 여전한가'라는 질문에 "도피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했고, 그의 변호인은 "(도피 의혹에 대해) 우리는 망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한 바 있다. 특검팀은 이날 오후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비서관은 이 전 장관의 호주대사 임명부터 사임에 이르는 기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