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주요 창작자 및 권리자 단체들이 참여하는 범창작자정책협의체가 생성형 인공지능 학습과정에서의 저작권 침해 면책 조항 도입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협의체는 지난 11일 개최한 긴급회의를 통해 AI 기업들이 요구하는 TDM(텍스트·데이터 마이닝) 면책 규정 도입을 거부한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천명했다고 15일 발표했다.
협의체는 인공지능 학습 목적의 TDM 면책 조항뿐만 아니라 한시적 면책 조항을 포함해 어떤 형태로든 저작권을 면제하는 법안 도입을 반대한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는 일부 AI 사업자들이 정부에 저작권법 개정을 요구하며 학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침해에 대한 책임 면제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대응이다.
회의에서는 실제 저작권 이용허가 체결 사례들이 공유되었다. 특히 생성형 AI 업계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맺은 계약은 전 세계 첫 사례로 주목받았으며, 초기 우려와 달리 절차가 복잡하지 않고 당사자 간 협상이 신속하게 진행되어 단기간에 성사되었다고 평가되었다. 협의체는 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제도적 보완만 이루어진다면 이용허가는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했다.
그러나 대외적으로 계약 체결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일부 기업들이 실제로는 계약 시도조차 하지 않거나 협상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문제점도 지적되었다. 협의체는 각 단체별 사례를 유형별로 정리하여 절차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핵심 의제인 AI 학습 이용허가 가격 모델 논의에서는 분야별 특화형 AI는 해당 권리자 단체와 개별 협상을 유지하되, 다양한 저작물을 동시에 활용하는 범용 대규모 언어모델에 대해서는 권리자 단체 간 합의에 기반한 '통합 가이드라인형 가격 모델'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새로운 가격 체계는 매출 연동 구조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최소보상 하한선을 설정하고, 저작물의 특성과 품질, 사용량 등을 고려한 '저작물별 가중치 제도'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설계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권리자에게는 정당한 보상을 보장하면서도 이용자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지우지 않는 균형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협의체는 매출 연동 구조 내에서 초기 비용을 최대한 낮춰 중소규모 AI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 향후 성공한 모델이 개발될 경우 그 성과를 창작자에게 충분히 환원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기존 플랫폼 기업의 수익 배분 구조를 참고하여 제도를 설계함으로써 권리자와 이용자 모두의 지속가능한 상생을 도모하는 현실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저작물은 학습에 활용할 수 없다는 '사전 계약 원칙'을 명문화하고, 모델이 양도되거나 재사용될 경우 동일한 조건을 승계하도록 하는 조항도 함께 검토하기로 했다. 협의체는 이러한 내용을 구체화하기 위해 공동 연구용역을 추진하여 가격 모델과 가중치 산정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권리자 단체 간 가이드라인 합의안을 도출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또한 권리자의 저작물을 이용자가 쉽게 검색하고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이터센터' 구축 방안도 검토에 들어갔다. 이는 AI 사업자들이 보다 용이하게 저작물에 접근하여 이용허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취지다.
협의체 관계자는 "AI 발전과 창작 생태계 보호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균형 있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며 "저작권자의 권리를 무시한 채 진행되는 무단 학습은 결국 저급한 결과물만을 대량생산하는 '가비지 인, 가비지 아웃' 구조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저작권자가 먼저 나서서 이용자 편익을 도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예외적인 사례이며, 권리자들 간에도 수익 배분을 두고 이견이 있을 수 있음에도 상생을 위해 서로 양보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권리자들이 이처럼 상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만큼, 이제는 AI 사업자들도 면책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성실하게 협상하고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시점"이라며 "저작권 원칙을 외면한 채 면책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문화 전체를 소멸시키는 길과 다를 바 없다"고 덧붙였다.
범창작자정책협의체는 음악, 영상, 웹툰, 사진, 미술 등 국내 핵심 창작자 및 권리자 단체들이 참여하는 협의체로, 창작자 권익 보호와 제도 개선을 위해 상시적인 협의 구조를 운영하고 정부 및 정당과의 공식 소통 창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