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SF 작가 켄 리우 "책의 미래는 예측 불가, 그러나 기술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다"

2025.09.15
세계적 SF 작가 켄 리우 "책의 미래는 예측 불가, 그러나 기술과 인간은 분리될 수 없다"

중국계 미국인 소설가 켄 리우(49)가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제1회 MCT페스티벌 참석을 위해 내한한 그는 15일 서울 중구 한 레스토랑에서 진행된 언론간담회에서 "문학의 앞날에 대해서는 확언하기 어렵다"며 "이미 활자 매체의 전성기가 지나갔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며, 숏폼 콘텐츠를 선호하는 현 상황에서는 텔레비전의 장래조차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종이 동물원'으로 휴고상·네뷸러상·세계환상문학상을 동시 석권한 유일한 작가인 그는 그러나 비관적 전망만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인류가 문맹으로 전락할 리는 없으며, 더욱 가치 있는 대안을 발견해낼 것이라는 것이 나의 견해"라고 덧붙였다.

1976년 간쑤성에서 출생한 리우는 11세에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이민자 출신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자와 변호사, 기술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2017년부터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나의 관심에 따라 늘 진로를 결정해왔다"며 "동시에 지속적으로 창작 활동을 해왔고, 15년간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가 부차적 활동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경제적 보상은 줄어들었지만 작가로서의 보람은 더욱 크다고 강조했다.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그 가치가 다르게 평가될 수 있지만, 내 소설을 읽고 희망을 얻었다는 수감자의 편지나 독서의 기쁨을 되찾았다는 독자들과의 만남에서 얻는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들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을 다룬 '북두', 한글에서 착안한 '매듭묶기' 등 한국 관련 소재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각 국가마다 '우리는 누구이며 왜 현재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에 대한 고유한 서사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의 경우 매우 짧은 기간 동안 현대적 국가를 건설한 현대성을 깊이 파악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공상과학소설 작가로서 그가 추구하는 바는 미래 예언이 아닌 현대적 신화 창조다. "과학소설 작가의 역할은 미래 전망과 무관하며, 현대의 신화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기술에 대한 그의 관점도 독특하다. "개미집 없이 개미를 이해하거나 벌집 없이 벌을 파악하기 힘든 것처럼, 기술 없이는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생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기술은 인간과 대립하는 악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발현"이라고 역설했다.

인공지능 시대에 대한 우려보다는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창작물을 무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예술가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AI 없이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 탄생할 것이라는 점이 더욱 흥미롭다"고 전했다.

작품의 영감은 과학자들과의 교류에서 얻는다고 했다. "과학 학술회의에 참석해 다양한 연구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극을 받는다"며 "하지만 그 자극이 곧바로 작품으로 이어지지는 않으며, 독서와 산책,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미래는 타인이 아닌 개인의 힘에 달려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