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뮌헨 근처 아우토반에서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운전자의 손길 없이 차로를 따라 질주하고 있었다. 주행 중이던 차량은 도로 차선 변화를 감지하자 적색 신호를 표시하며 자율운행을 중단했다.
지난 9일 현지에서 벤츠가 전 세계 처음으로 상업화한 SAE 레벨3 자율주행 기술 '드라이브 파일럿' 시승 기회가 마련됐다. 독일과 중국, 미국 몇몇 주에서 운용되는 이 시스템은 고속도로에서 전방 관찰이나 조작 없이도 스스로 운행하는 능력을 보유했다.
SAE 자율운전 1단계는 차로 유지와 적응형 순항 제어 같은 보조 기능만 제공하며 운전자가 직접 주행해야 한다. 2단계는 부분 자동화로 가속과 감속, 조향이 모두 가능하나 운전자 개입이 필요하다. 테슬라 오토파일럿과 현대차 HDA2가 이에 해당한다.
벤츠 드라이브 파일럿은 SAE 3단계로서 고속도로 등 특정 환경에서 시스템이 자체적으로 주행을 담당한다. 다만 시스템 요청 시 운전자가 즉각 개입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 현재 레벨3 자율운전을 세계 최초로 승인받아 출시한 것은 벤츠가 유일하다.
테슬라 FSD와 GM 슈퍼크루즈는 실질적으로 SAE 2단계이며, 손을 놓고 운전할 수 있고 교차로 등에서 운행 영역을 확대하여 '레벨2++'라 칭할 수는 있지만 3단계로는 보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 시각이다.
벤츠 드라이빙 파일럿은 고속도로에서 최고 시속 95km까지 자율운전이 가능하다. 고속도로 최우측 차로에서 주행을 시작하면 스티어링 휠 양측 버튼에 녹색등이 점등되며, 이를 동시에 누르면 자율운전이 시작된다.
이후 운전자는 전방 주시 없이 두 손을 떼고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주행 중 차량 우측에 새 차선이 생성되면 자율운전 기능이 종료되며 운전자가 직접 운전을 인수해야 한다.
실제 자율운전 중 주행 차로 옆에 새 차선이 나타나자 스티어링 휠에 적색등이 켜지며 자율운전 종료를 알렸다. 이 때문에 완전자율운전이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벤츠 드라이빙 파일럿은 고속도로 교통 흐름이 원활하고 전방 차량과 거리가 적절해야 작동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량 외부 환경 등으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날 주행 중 자율운전 기능 종료 시 오류가 발생하여 재시동 후 초기화를 거쳐 벤츠 드라이브 파일럿이 재작동하기도 했다.
벤츠는 드라이브 파일럿을 S클래스와 EQS에 장착했다. 자율운전 시스템은 카메라, 센서, 라이다를 활용한다. 카메라만 사용하는 것보다 안전성을 우선시한 것이다.
마르쿠스 쉐퍼 벤츠 CTO는 "단일 센서 방식으로는 벤츠의 안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벤츠 드라이브 파일럭은 5천950유로(968만원)의 옵션으로 제공되며, 이미 드라이브 파일럿이 탑재된 차량은 옵션 구매 후 무선 업데이트로 이용 가능하다. 다만 국내 도입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한편 이날 벤츠 레벨2++ 자율운전 체험도 진행됐다. 레벨2++는 차량이 도심과 교차로 등에서 스스로 조향과 가감속을 수행하는 기능으로 국내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날 시내 지역 주행에서 자체적으로 차선을 변경하고 정지하는 등 자율운전에 근접한 기능을 선보였다.
국내에서는 자율운전 상용화를 위한 정책적 지원도 활발해지고 있다. 대구시는 16일 호텔인터불고 대구에서 자율운전 오픈이노베이션 기업 간담회 및 기술교류 세미나를 개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행사는 자율운전 상용화 가속화를 위해 기업과 유관기관이 모여 맞춤형 지원방안과 정책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다.
대구시와 한국자동차연구원 대경분원, KIAT 등 유관기관과 자율운전 및 미래차 전환을 추진하는 지역 자동차 부품기업 관계자들이 참여한다. 행사는 세미나와 간담회로 구성되며,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라이드플럭스, 에스더블유엠 등 국내 자율운전 선도 기업들의 사업 현황과 대구시 자율운전 산업 인프라의 실증 성과를 공유하고 협력 의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정부 차원에서도 자율운전 기술 개발을 위한 규제 개선이 논의되고 있다. 현재 자율운전 AI 개발 시 보행자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한 영상 데이터만 학습할 수 있어 기술 개발에 제약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원본 영상을 활용할 경우 자율운전 성능이 최대 17.6% 향상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국내 자율운전 시범운행 규모도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중국 3천대, 미국 2천대 이상과 달리 한국은 47개 지구에서 132대만 운행 중이다. 시범지구를 광역자치단체 몇 곳에 집중해 실증사업을 대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