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문직 취업비자 H-1B 신청 비용 대폭 인상 조치로 인도 기술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기존 약 천 달러 수준이었던 비자 발급 비용이 10만 달러로 100배 급등하면서 인도 IT 기업들의 미국 사업 전략 전면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미국 이민서비스청 통계를 보면, 전체 H-1B 비자 보유자 중 인도 국적자 비율이 71%에 달해 이번 조치의 최대 피해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이 12%로 뒤를 이으며, 필리핀·캐나다·한국 순으로 나타났다. 인도의 대표적 IT 서비스 기업인 타타컨설턴시서비스는 연간 3000~4000건의 해당 비자를 활용해왔으며, 매출의 절반 가량을 북미 시장에서 창출하고 있어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발표 직후 인도 증시에서는 기술주들이 일제히 폭락했다. 타타컨설턴시서비스가 3.4%, 인포시스가 3.9%, 테크 마힌드라가 6.5% 각각 하락하며 두 달래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엠파시스와 LTI마인드트리 등 중형 IT 기업들도 6% 이상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조치는 러시아산 원유 수입 문제로 인한 50% 관세 부과에 이어 미-인도 관계에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특히 인도 고위급 대표단의 무역협상 차 방미 하루 전에 해당 행정명령이 서명돼 양국간 긴장 고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피유시 고얄 상무장관과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외무장관이 예정된 미국 방문에서 이 문제가 핵심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규제가 글로벌 IT 산업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촉발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이 높은 비자 비용을 회피하기 위해 멕시코나 캐나다 등 인접국으로 인력을 파견하거나, 인도 내 글로벌 역량센터를 통한 원격 업무 비중을 확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JP모건체이스·시티그룹·골드만삭스 등 월가 주요 금융기관들이 인도에서 운영 중인 사업지원센터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인도 내 글로벌 역량센터 시장은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9.8% 성장해 640억 달러 규모로 확대됐으며, 2030년에는 현재 1700개에서 250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티그룹은 인도에 약 3만1000명을, 뱅크오브아메리카는 2만7000여명을, JP모건은 5만5000명을 각각 고용하고 있어 이러한 추세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JP모건의 토시 자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비자 규제로 인한 인도 해외 근로자들의 송금 감소가 루피화 약세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인도 출신 숙련 근로자들이 연간 본국으로 송금하는 규모는 약 350억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또한 10만 달러라는 막대한 비자 수수료가 미국 유학을 희망하는 인도 청년들에게 사실상 추가 세금으로 작용해 장기적으로 미국 유학 수요도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뉴델리 사회개발연구위원회의 비스와짓 다르 교수는 이번 조치가 서비스 분야에서의 사실상 비관세 장벽으로 작용하며 양국 관계에 치명적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도 소프트웨어·서비스 기업 협회 나스콤도 성명을 통해 전 세계 기업과 전문직 종사자들이 불확실성을 느끼고 있으며 해외 프로젝트 사업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역설적으로 인도에게 장기적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JP모건의 사디즈 치노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H-1B 인력의 상대적 비용 상승으로 더 많은 업무가 해외로 이전되는 오프쇼어링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며, 이는 인도가 서비스 수출 확대라는 형태로 혜택을 볼 수 있는 방식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