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 요원에 "복면 벗어라"…캘리포니아가 트럼프에 선전포고한 방법

2025.09.22
ICE 요원에 "복면 벗어라"…캘리포니아가 트럼프에 선전포고한 방법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이민자 추방 정책에 맞선 대응 강도를 극도로 높이고 있다. 연방 정부와의 전면 충돌을 감수하면서도 지역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온 이민세관단속국(ICE)의 '얼굴 가린 요원들'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21일(현지시간) 외신들에 따르면 뉴섬 주지사는 전일 연방 법집행관들의 근무 중 신원 은닉을 위한 마스크 사용을 차단하는 법률에 최종 승인했다. 이로써 ICE 직원들은 내년 1월부터 캘리포니아에서 이민 관련 업무 수행 시 바라클라바나 스키용 안면 보호구 등 정체성을 숨기는 장비 착용이 불가능해진다.

법률은 ICE 직원 등 법집행 담당자들이 특별히 명시된 상황 외에는 업무 중 얼굴 은폐를 범죄행위로 간주한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감염 방지용 의료 마스크나 수술 마스크는 허가되며, 특수부대 대원들에게도 예외 조항이 적용된다. 아울러 캘리포니아 내 모든 법집행 기구들이 내년 7월까지 안면 가리개 사용 제한 방침을 수립하고 공표하도록 의무화했다.

언론들은 이번 조치를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ICE 직원들이 안면을 가린 상태로 광범위한 이민자 연행 작전을 전개한 것에 대한 뉴섬 주지사의 즉각적인 반격으로 분석했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6월 불법 체류자 색출에 착수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집회가 발생하자 진압을 위해 캘리포니아 주방위군의 60일간 연방군 전환을 지시했다. 당시 뉴섬 주지사는 "트럼프가 헌법 준수를 거부하며 권한을 초과하는 행위로 공포와 테러를 부추기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했었다.

뉴섬 주지사는 ICE의 이민 단속을 두고 표식 없는 차량과 복면한 인물들이 등장해 사람들을 사라지게 만든다며 "디스토피아적 SF 영화를 연상시킨다"고 혹평했다. 이어 법률 서명식에서 캘리포니아 거주민의 27%가 해외 출생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한다. 이것이 캘리포니아를 위대하게 하고, 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원동력"이라며 "하지만 현재 미국은 공격당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는 이민자 단속을 강력 추진하는 트럼프 정부의 기조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언급이다.

뉴섬 주지사는 이날 안면 가림 금지 조항을 비롯해 총 5건의 법률에 서명을 완료했다. 나머지 법률들은 ▲ICE 직원의 유효한 법원 영장 없는 학교 진입 차단 ▲학교 관리자의 캠퍼스 내 요원 존재 시 가족 통보 의무화 ▲의료진의 수색 영장 없는 환자 이민 신분 공유 금지 ▲모든 법집행 기관의 신분증 또는 배지 번호 의무 표시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안면 가림 금지법은 오랫동안 백악관 진출 포부를 드러내온 뉴섬 주지사가 트럼프의 이민 단속에 대항해 토요일 승인한 5개 법률 중 하나"라고 전했다. 또한 "이러한 성격의 법률이 미국에서 제정된 것은 사상 초유"라며 "이번 조치는 투명성을 저해하고 공포를 확산시키며 범죄자들의 연방 요원 사칭을 가능케 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ICE 직원들의 관례를 종료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보도했다.

그동안 ICE의 상위 기관인 국토안보부는 직원들의 신변 보호 등을 근거로 법집행 과정에서의 마스크 사용을 승인해왔다. 트리샤 맥클래플린 국토안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캘리포니아의 신규 법률을 "비겁하다"며 "우리 직원들의 안전을 위협하려는 노골적인 시도"라고 공격했다. 그는 또한 이민 단속 과정에서 직원들이 투석이나 화염병 공격을 받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 정부가 연방 소속 직원들에게 마스크 착용 금지를 강요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연방 검사 대행 빌 에세일리는 소셜미디어 X를 통해 "캘리포니아는 연방 정부에 대한 관할권을 보유하지 않는다"며 "각 기관에서 시행되는 마스크 착용 금지 조치는 업무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표명했다.

이 법률의 법적 쟁점과 별개로, ICE 직원들의 마스크 착용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은 타 지역으로도 확산되는 양상이다. 테네시, 미시간, 일리노이, 뉴욕, 매사추세츠, 펜실베이니아 등 여러 주 의회와 연방 의회 민주당 의원들이 유사한 법률을 발의한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