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간 미국의 군사적 보호막에 의존했던 사우디아라비아가 핵무기 보유국인 파키스탄과 전략적 방위조약을 체결하며 안보 다각화에 나섰다고 외신들이 18일 보도했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이 제공하는 중동 지역 안보 보장에 대한 확신이 약해지면서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17일 리야드에서 '어느 한 국가에 대한 무력 공격을 양국 전체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한다'는 내용의 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다. 이 조약은 양국 간 국방협력을 다층적으로 확대하고 모든 침략행위에 대한 공동 대응력을 구축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파키스탄은 17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것으로 추산되며, 사우디 고위 당국자는 이번 조약이 "모든 군사적 수단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방위협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파키스탄의 핵 억제력이 사우디에게도 적용될 여지를 시사하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특히 지난 9일 이스라엘이 카타르 도하에서 하마스 고위 인사들을 겨냥해 실시한 공습은 사우디의 이번 결정에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중동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를 보유한 미국의 핵심 파트너인 카타르조차 이스라엘의 타격을 받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사우디는 미국의 보호 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의 대미 신뢰 약화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9년 사우디 핵심 석유시설이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당했을 때 이란의 배후 개입이 의심됐지만 미국의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2022년 예멘 후티 반군의 UAE 아부다비 미사일 공격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사우디는 미국이 역내 위협을 완전히 차단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게 됐다.
빈 살만 왕세자는 지난해 미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강력한 사우디는 강력한 미국을 의미한다"면서 안보 보장이 충분하지 않을 경우 무기 조달처를 변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와 파키스탄은 1960년대 후반부터 군사협력을 지속해왔으며, 현재 250만 명의 파키스탄인이 사우디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우디는 파키스탄의 주요 에너지 공급원 역할을 하며 경제적 지지대가 되어왔다.
이번 조약은 사우디가 중동 내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2023년 중국의 조정으로 이란과 관계를 복원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정이 자국 안보 불안정성 해소를 위한 사우디의 의도가 현실화된 결과이며, 미국 주도의 중동 안보 체제에 균열이 나타나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