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이 불참한 가운데 개최된 일제 강제동원 현장 사도광산 추도행사에서 일본이 다시 한번 조선인의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 후 지속적으로 미래지향적 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음에도, 역사 인식 문제에서는 일본의 완고한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사도광산 추도행사 실행위원회는 13일 오후 1시30분경 니가타현 사도시 아이카와개발종합센터에서 일본 측 인사 약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행사를 진행했다. 일본 정부 측 대표로는 오카노 유키코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이 참석했다. 오카노는 국장급으로, 차관급인 외무성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이 참석했던 작년보다 위상이 낮아진 상태다.
에도시대 최대 금광이었던 사도광산은 태평양 전쟁 시기 조선인 약 1500여명이 동원되어 노예와 다름없는 조건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현장이다. 일본 정부는 작년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등 노동자들을 위한 추도행사를 진행하고, 강제징용 역사를 알릴 전시관을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전시실 어디에도 강제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표현은 없었고, 작년 추도행사에서도 이를 인정하지 않아 한국은 행사 직전 불참을 결정했다.
2년째 불완전하게 열린 이번 추도행사에서도 일본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오카노는 추도사에서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는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하에서라 하더라도 위험하고 혹독한 환경에서 힘든 노동에 종사했다"고 말했다. "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한 분들도 있다"면서 말이다.
결국 작년과 같이 강제성은 언급하지 않은 채 '합법적 식민 통치 하에서 합법적 동원명령에 따른 조치'라는 기존 일본 측 논리를 되풀이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측은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그간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택된 모든 관련 결정과 이에 관한 일본의 약속들을 유념할 것"이라고 표명했다. 일본 정부가 여기서 유념하겠다고 한 '결정과 약속'에는 2015년 강제노동시설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한국인들이 '의지에 반해 노역'한 사실을 인정한 것도 포함된다고 확인했다. 그러면서 실제로는 말과 다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행사 주최 측이 작년에는 일본 정부 대표 발언을 '내빈 인사'로 소개했지만, 올해는 '추도사'로 명명한 것이 사실상 일본이 보인 성의의 전부였다. 정부는 향후 유족들을 초청해 사도광산에서 별도 추도행사를 열어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희생을 기린다는 계획이다. 추도행사는 다음달로 예상된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한일 간 역사 분쟁이 미래지향적 관계의 발목을 잡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하며 한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하며 셔틀 외교 재개 의지를 표명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하지만 이번 추도행사는 일본이 과거사 문제에서 역사수정주의적 왜곡을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이재명 정부의 의도에 찬물을 끼얹은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언론도 우려를 표했다. 교도통신은 "작년과 동일한 일본 정부 발언은 피해자를 모독한 것이 된다. 감사가 아니라 사과라는 말이 필요하다"는 한일관계 연구자 요시자와 후미토시 니가타국제정보대 교수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한국 정치 연구자인 아사바 유키 도시샤대 교수도 "세계유산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포함해 전체 역사를 전하는 것으로, 원하는 것만 선별해서는 안 된다"며 "전체를 보여주지 않으면 역사수정주의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련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부는 추도행사가 그 취지와 성격에 부합하는 내용과 형식을 갖춰 온전하게 치러져야 한다는 입장이며, 앞으로도 일본 측과 계속 협의해 나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또 "올해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기본 입장 하에서 상호 신뢰와 이해를 쌓아가며 여건을 갖춰 나갈 때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협력의 질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사도광산 추도행사 문제가 모처럼 순풍을 탄 한일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관리에 나선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 측이 이에 호응하지 않는 이상 양국 간 역사 분쟁은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