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셜미디어 접속 제한 조치에 격분한 네팔 청년층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극심한 유혈사태로 번지면서 정국 혼란이 절정에 달했다. 13일(현지시간) 네팔 대통령실은 수실라 카르키 임시 총리의 권고에 따라 하원을 해산하고 내년 3월 5일 총선을 실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번 사태는 지난 5일 네팔 당국이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엑스 등 26개 SNS 플랫폼에 대한 접근을 전면 차단하면서 시작됐다. 정부는 허위정보와 가짜뉴스 확산 방지를 명분으로 내세웠으나, 젊은 세대는 이를 표현의 자유 억압이자 온라인 반부패 운동을 봉쇄하려는 권력 유지 시도로 받아들이며 거센 저항에 나섰다.
시위 과정에서 충격적인 장면들이 연속 포착됐다. 온라인에 확산된 영상에는 비슈누 프라사드 파우델 재무장관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내의 차림으로 시위대에 사지가 붙잡혀 길거리에서 끌려다니는 모습이 담겼다. 또한 시위대에 쫓기던 이 인물이 발차기를 당해 넘어지고, 강에서 헬멧을 쓴 채 도피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아르주 라나 데우바 외무장관 역시 자택에서 공격당해 마당에 쓰러진 모습이 촬영되기도 했다.
카트만두 시내 상공에서는 정부 고위인사들과 가족들이 호텔 옥상에서 구조용 로프에 매달려 헬기로 긴급 탈출하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이러한 극한 상황은 분노한 민심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부패한 기득권층과 경제난에 시달리는 서민층 간의 극명한 대조가 시위 확산의 주요 배경이 됐다. SNS상에서는 정치인 자녀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상과 생계곤란에 허덕이는 일반 시민들의 모습을 비교한 콘텐츠가 급속히 퍼지면서 젊은 층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
경찰과 군이 최루가스, 물포, 고무탄 등을 사용한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현재까지 최소 51명이 목숨을 잃고 1천30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중에는 시위 참가자 21명 외에도 경찰관 3명과 교도소 탈옥 과정에서 발생한 수감자들도 포함됐다.
시위 혼란 속에서 전국 교도소에서 1만3천500명의 수감자가 집단 탈옥하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이 중 일부만 재검거됐을 뿐 1만2천명 이상이 여전히 도주 중인 상태다. 탈옥자 중 일부는 인도 국경을 넘으려다 현지 경비대에 붙잡히기도 했다.
정국 안정을 위해 람 찬드라 포우델 대통령이 임명한 수실라 카르키 임시 총리는 2016년 네팔 최초의 여성 대법원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당시 부패 혐의자들에 대한 엄정한 판결로 국민적 신뢰를 얻었던 그는 시위대로부터도 차기 지도자로 지지받아왔다. 의원내각제인 네팔에서 실권을 쥐는 총리직에 여성이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카르키 총리는 취임 직후 부상당한 시위대를 병원에서 직접 만나며 국정 안정화 작업에 착수했다. 헌법 전문가들은 시위 과정의 폭력 사태 조사와 책임자 처벌, 부패 척결, 치안 회복 등이 새 정부의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수도 카트만두는 통행금지령이 완화되고 교통이 재개되면서 점차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대규모로 배치됐던 군병력도 규모를 축소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사회적 후유증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