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신용평가기관 피치가 현지시간 12일 프랑스의 국가등급을 기존 'AA-'에서 'A+'로 1단계 하락시켰다고 발표했다. 이는 한국과 영국보다 낮은 등급으로, 향후 전망은 '안정적'으로 평가했다.
평가기관은 조정 배경에 대해 "의회 신뢰투표에서 행정부가 패배한 상황은 국내 정치 갈등과 양극화가 악화되었음을 나타낸다"며 "이런 혼란상태는 실질적인 재정 안정화를 이루는 정치체계의 능력을 저해시킨다"고 밝혔다.
이같은 조치는 전국적으로 행정부의 긴축방침에 맞서는 '국가 마비' 항의시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7월 프랑수아 바이루 전 총리가 예산 동결과 휴일 단축을 담은 긴축안을 제시하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분노한 국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활용해 '9월 10일 국가를 마비시키자'는 운동을 전개했다.
의회 불신임으로 퇴진한 바이루 총리를 대신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심복인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국방장관을 새 총리로 지명하자 격분한 국민들이 거리로 몰려나왔다.
프랑스의 적자규모는 작년 기준 경제총량 대비 5.8%로 유로권 평균인 약 3.1%를 상당히 초과했다. 국가채무는 경제총량의 113%를 넘어서며 유로권에서 그리스, 이탈리아 다음으로 세 번째로 심각한 수준이다.
마크롱 제2기 정부는 2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총리를 5차례나 바꿀 정도로 긴축방향을 두고 정치적 혼돈이 지속되면서 재정 안전성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다.
피치는 "앞으로 수년간 국가채무 안정을 위한 뚜렷한 방향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지적하며 "국가채무가 2024년 경제총량의 113.2%에서 2027년에는 121%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다"고 예측했다.
국가등급 하락은 각종 자금조달 비용 증가로 이어져 재정상황 악화를 가속화시키는 악화순환을 만들 수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번 등급 하향이 내년 긴축예산 마련에 애쓰고 있는 르코르뉘 총리에게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관측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프랑스 10년 만기 국채금리와 이탈리아의 동일 만기 국채금리가 거의 동등한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는 프랑스 국채의 신뢰성이 이탈리아 수준으로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피치의 이번 조치가 예상되었던 만큼 시장에 이미 반영되어 큰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주요 평가기관 중 프랑스에 가장 낮은 등급을 부여한 상황에서 다른 평가회사들의 추가 하향도 우려된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등급 하락을 두고 프랑스 정계에서는 책임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축출된 바이루 전 총리는 "현실을 외면하는 '기득권층'이 이끄는 국가는 반드시 그 댓가를 치르게 된다"고 비판했다. 반면 바이루 정부 축출에 앞장선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는 "공공재정 실상을 과대포장한 세력들이 책임져야 할 문제"라며 "프랑스 채무는 여전히 안전하고 선호받는 자산"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