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경주 APEC 정상회의를 한 달여 앞두고 정상 만찬장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라한호텔 대연회장으로 급작스럽게 변경했다. 외교부는 19일 APEC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제9차 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더 많은 참석자를 수용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박물관 내 신축 만찬장의 준비 상태가 부적절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건축비만 41억 원이 투입돼 한옥 양식으로 건설된 이 시설은 지난 17일 정부 합동 점검에서 전기와 소방 분야의 안전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편의시설의 부재였다. 만찬장 내부에 화장실이 설치되지 않아 각국 정상들은 50미터 이상 떨어진 외부 화장실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천 시에는 우산을 들고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일반 참석자들의 경우 300미터나 떨어진 화장실까지 가야 하는 문제점도 제기됐다.
조리 시설 역시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만찬장 내에서 음식을 준비할 수 없어 정상회의장에서 조리한 후 차량으로 20분간 운반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결과적으로 정상들에게 차가운 음식을 대접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또한 리셉션 장소 진입 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고, 정상 전용 승강기도 한 대에 불과했다.
목조 가설 구조물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도 컸다. 한옥 건물의 안정화에는 통상 3개월 정도가 필요하지만 행사까지 시간이 부족한 상태였다. 박물관 시설 손상 가능성과 공사로 인한 관람객 불편 문제도 고려 요인이었다.
이러한 문제들은 사전 검토만 충분히 했다면 미리 파악할 수 있었던 사안들이어서 준비 부족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만찬장이 결정된 지난 1월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덕수 당시 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으며 APEC 준비에 차질이 우려됐던 시기였다.
정부는 건축비 41억 원을 들인 박물관 신축 건물을 APEC CEO 서밋과 연계한 기업인 네트워킹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퓨처테크 포럼 등 다양한 경제 행사가 APEC 주간 기간 중 이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라한호텔은 이번 회의를 대비해 보문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최고층에 프레지덴셜 스위트 2곳을 새롭게 조성하는 등 국빈급 서비스 준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라 왕실 별궁인 임해전에서 영감을 얻은 인테리어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 개발도 완료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