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8년 평양에서 남북이 합의한 9·19 군사합의가 7주년을 맞이하면서, 전쟁 방지와 평화 구축을 위한 약속의 의미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최근 공개된 디즈니+ 드라마 '북극성'이 한반도 전쟁 위기 상황을 다루며 평화의 소중함을 환기시키고 있는 가운데, 9·19 합의 정신의 회복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남북이 지난 2018년 9월 평양정상회담에서 채택한 군사합의는 한반도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역사적 약속이었다. 양측은 모든 적대행위 전면 중단, 비무장지대 평화지역화, 서해 해상 평화수역화, 교류협력 보장을 위한 군사조치 등을 약속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닌 감시초소 철거, 비행금지구역 설정 등 구체적 이행조치를 포함해 우발적 충돌 방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
세계 군비통제 역사에서 빼어난 신뢰구축장치로 평가받는 이 합의는 휴전 당사국이 이처럼 세밀한 긴장완화 규칙에 합의한 최초 사례다. 냉전시기 미·소간 직통전화 설치나 헬싱키 협약을 통한 군사정보 교환보다 진전된 형태로, 정전협정을 현대적으로 보완한 최고의 신뢰구축 장치였다.
그러나 이 소중한 합의는 현재 사문화된 상태다. 북한은 2023년 11월 전면 파기를 선언했고, 우리 정부도 지난해 6월 효력을 정지시켰다.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오물풍선 살포 등 연이은 도발이 합의 무력화의 직접적 계기가 됐지만, 근본적으로는 70여 년간 지속된 적대관계와 불신의 누적이 배경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 역시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다. 중국 전승절에서 북·중·러 3국 정상이 공식 석상에 함께 모습을 드러내며 반미연대를 과시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ICBM 고체연료 기술 발전을 통해 기습 발사능력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일 3국 역시 '프리덤 에지' 훈련과 '아이언 메이스' 핵·재래식 통합연습으로 대응하며 악순환의 안보 딜레마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19일 파주 캠프그리브스에서 열린 기념행사에서 "올해 안에 9·19 군사합의가 선제적으로 복원돼야 한다"며 "정부 내 협의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한 역대 민주정부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합의 복원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순한 합의 복원만으로는 70여 년간 쌓인 숙적관계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한 상황에서, 상호 검증과 이행을 담보하는 새로운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연속적이고 정례적인 대화 접촉, 상호 검증 체계 구축을 통해 점진적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장기적 전략이 요구된다.
평화 구축을 위한 창의적 구상도 제시되고 있다. '평창에서 LA로'라는 슬로건 하에 향후 3~4년간 평창평화포럼 재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활용한 남북 문화유산 공동전시, 2027년 세계청년대회 평화축전, 2028년 LA올림픽 평화올림픽 승화 등 단계적 평화 프로젝트가 검토되고 있다.
군사적 신뢰구축과 함께 문화적 신뢰구축을 추진하며 입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추진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K-컬처의 글로벌 영향력을 활용한 평화 구상으로, 세계인의 관심을 한반도 평화로 모으자는 전략이다.
9·19 군사합의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기 위한 첫 단추였다. 비록 잠시 풀렸지만, 새로운 손길이 다시 끼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남북이 이뤄낸 약속들을 헛되이 하지 말고 지켜나가야 한다. 나아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창의적인 평화 구상으로 그 약속을 업그레이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