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소재 신라호텔이 정부 행사를 사유로 올해 11월 초로 예정되었던 일부 웨딩 행사 일정을 변경 통보하여 파문이 일고 있다. 호텔 측은 고객들에게 "11월 초 정부 행사가 계획되어 예약 일정 조정을 안내드린다"며 취소 결정을 알렸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10월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와 연관된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주요국 지도자들이 방한 예정이며, 정부는 APEC 기간 전후 서울에서 한미·한중 양자 회담 개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양국 대표단이 서울 내 숙박 시설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비 부부들은 갑작스러운 통보에 혼란을 겪고 있다. 혼례 준비는 보통 1년 이상 전부터 진행되며, 유명 예식장의 경우 2년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 결혼식 일자 변경 시 신혼여행 예약, 웨딩 촬영, 헤어·메이크업 등 관련 서비스들도 함께 조정해야 하는 연쇄적 문제가 발생한다.

한 예비 신부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중대한 인생 행사가 예정일 50일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당황스러움을 드러냈다. 이미 청첩장을 배포한 상황에서 대체 장소를 구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호텔 측은 사전 계약서에 '정부 행사 발생 시 일정 변경 가능' 조항이 명시되어 있어 별도 위약금은 없으나, 도덕적 차원에서 개별 고객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정부 행사 내용이나 영향받은 예약 건수는 공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가 호텔에 압력을 가해 1년 전부터 준비된 혼례를 취소시키는 것은 민주국가에서 발생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 의원은 "자녀가 소중하다면 다른 이들의 자녀도 마찬가지로 귀하게 여겨야 한다"며 "권력 없는 시민들이 정부 한 마디에 예식장까지 내놓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또한 "국제적 행사의 중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시민의 행복권과 기본권을 침해할 수는 없다"며 "즉각 국민에게 사과하고 상황을 바로잡을 것"을 요구했다고 덧붙였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국빈 방문 등 정부 행사의 경우 대통령실이나 관련 부처에서 일정 조율을 요청하는 경우가 빈번하며, 호텔 입장에서는 거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