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개발 예산 감축 영향으로 기초과학 분야 핵심 연구과제 채택률이 과거 대비 3분의 1 수준까지 급락하며 학계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생태계의 '과제 가뭄'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전 연구 단계에 걸친 지원 체계 붕괴 우려가 커지고 있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연구재단에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수신진 연구과제 채택률은 2021년 31.3%에서 금년 10.2%로 폭락했다. 중견유형1 분야 역시 동일 기간 38.7%에서 12.7%로 대폭 하락했다.
2023년 연구개발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부가 대형 과제 중심으로 재편하면서 신규 지원 건수를 현저히 줄인 결과다. 당시 행정부는 연구비 분산 지원을 '나눠먹기'라고 비판하며 대규모 과제 집중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기초 연구를 뒷받침하던 소규모 지원사업인 생애첫연구와 기본연구가 전면 중단됐다.
전체 기초연구 지원 건수는 2021년 1만5183건에서 1만1827건으로 크게 줄었다. 현장에서는 예산 규모보다 지원 과제 수 감소가 더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 제기돼왔다.
개인 기초연구는 연구자 1명당 1개 과제 원칙이 적용되는데, 소규모 지원사업 폐지로 매년 지원받지 못하는 연구자가 급증하며 예상된 혼란이 현실화된 것이다. 특히 기존 생애첫연구와 기본연구 지원 대상자들이 신진·중견 과제로 대거 이동하면서 경쟁이 극도로 치열해졌다.
리더연구 분야도 2021년 21.9%에서 2025년 5.7%로 4분의 1 수준까지 떨어졌고, 박사후연구원 지원 프로그램인 세종과학펠로우십은 20.6%에서 9.5%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박사후연구원부터 신진, 중견, 리더급까지 전 연구 단계에서 지원 기회가 현저히 축소된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들어 중견 창의과제 885건 추가, 신진 씨앗연구 400건 확대 등 긴급 대응책을 내놨으나 근본적 해결에는 이르지 못했다. 창의과제 최종 선정 규모를 1291건으로 45.9% 늘렸지만 채택률은 19.4%에 그쳤다. 연간 1억원 규모 단기 지원인 신진 씨앗연구도 18.8% 채택률을 보여 기존 생애첫연구의 50% 내외 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
학계에서는 안정적 채택률 확보 없이는 신진연구자의 독립적 연구 수행이 어렵고 후학 양성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채택률 공시 등을 요구했지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예산 감축 이후 관련 정보 공개를 중단했다.
한 과학기술원 교수는 "2022년까지 생애첫연구나 기본연구에서 50% 이상 채택하다가 갑작스럽게 완전 폐지하는 방식은 연구실 운영 계획 수립을 극도로 어렵게 만든다"며 "채택률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예측 가능하도록 정책 개선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차기 정부는 기초연구 환경 복구를 위해 내년도 개인 기초연구 지원 규모를 1만5311건으로 대폭 확대하고, 기본연구 재개 및 핵심연구(기존 중견연구) 운영 탄력화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다만 기초과학학회협의체 등이 제시한 연간 최소 6400건 규모 확대 요구에는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복구 수준에 관심이 모아진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향후 연구자 수혜율 중심 관리 체계로 전환을 검토 중"이라며 "기존 단기 과제들의 지원 기간 연장을 통해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황정아 의원은 "현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 급감으로 기초과학연구 영역에서 생애기본연구과제 폐지는 물론 실질적 괴멸 수준 축소가 발생했다"며 "기초연구 부재는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는 점에서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근간인 기초연구에 대한 대담하고 적극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