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문직 비자 규제 강화…한국에겐 인재 확보 전략 기회 될까

2025.09.20
미국 전문직 비자 규제 강화…한국에겐 인재 확보 전략 기회 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문직 취업비자인 H-1B의 수수료를 연간 10만달러(약 1억4천만원)로 100배 가까이 올리며 진입 장벽을 대폭 높인 가운데, 한국 정부가 우수한 과학기술 인력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H-1B 비자는 그동안 구글, 테슬라, 메타 같은 실리콘밸리 거대 기술기업들이 핵심 인재를 확보하는 주요 통로 역할을 해왔다. 연간 8만5천건으로 발급이 제한되는 이 비자는 추첨제로 운영되며, 기본 3년간 체류를 허용하고 연장 및 영주권 신청도 가능하다.

올해 초 트럼프 행정부 출범 당시에는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H-1B 확대 요구가 높아지면서 다른 국가들의 우려를 키웠다. 하지만 미국이 과학기술 예산을 크게 줄이고 이어서 비자 제한을 연이어 강화하면서, 오히려 미국을 떠나는 인재들을 각국이 유치하려는 경쟁구도로 바뀌고 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4~2023년) 미국에서 발급된 H-1B 비자 가운데 한국인은 총 2만168명에 달한다. 이는 전체 발급량의 1% 수준으로, 연간 약 2천명의 국내 인재가 미국으로 유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들 대부분은 박사후연구원이나 유학 후 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등 핵심 기술 분야에 취업한 고급 전문인력들이다.

이런 상황 변화에 맞춰 정부도 인재 유치 정책 수립에 본격 나서고 있다. 지난달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중심으로 9개 부처 실장급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가 구성됐으며, 이달 말 새로운 인재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사업은 '브레인 투 코리아' 프로젝트다. 전략기술 분야의 박사후연구원, 신진연구자, 석학들을 대상으로 2030년까지 AI와 바이오 등 분야에서 2천명을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범부처 협업을 통해 비자부터 주거, 교육, 취업에 이르는 전 과정 정착 지원 서비스를 마련할 계획이다.

2023년 388명의 순유출을 기록한 우수 과학자 유출입 규모를 2030년 500명 이상 순유입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졌다. 또한 AI와 전략기술 분야 박사후연구원 400명 유입을 목표로 3천억원을 투자하는 이노코어 사업도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구혁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1차관은 최근 민관합동 태스크포스 회의에서 "20여년 전 IMF 외환위기 속 이공계 기피 현상이 이공계 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져 정책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듯, 이번 인재확보 대책도 현시대 이공계 인재들에게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해외 인재 유치와 국내 인재 지원 간 균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역시 H-1B 확대가 자국민 일자리를 줄인다는 논란을 겪은 만큼, 국내 인재 양성 및 처우 개선과 해외 인재 영입을 동시에 추진하는 균형잡힌 접근이 요구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