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리카 야생에서 서식하는 침팬지들이 자연 발효된 열매를 통해 날마다 상당량의 알코올을 섭취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캠퍼스 과학자들이 실시한 조사에서 침팬지 한 마리가 하루 평균 14g의 순수 에탄올을 먹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팀은 우간다 키발레국립공원의 동부침팬지 집단과 코트디부아르 타이국립공원의 서부침팬지 무리를 대상으로 2019년부터 식단 분석을 진행했다. 카메라를 설치해 이들의 먹이 섭취 패턴을 관찰한 뒤, 침팬지들이 자주 찾는 나무 아래서 떨어진 열매들을 직접 수집해 성분을 조사했다.
분석 대상이 된 21종의 과일에서는 평균 0.26%의 에탄올이 검출됐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동부침팬지가 선호하는 무화과류에서는 0.32%, 서부침팬지가 즐겨 먹는 기니자두와 쓴나무껍질나무 열매에서는 0.31%의 알코올 농도가 나타났다. 침팬지들이 매일 체중의 5~10%에 달하는 약 4.5kg의 과일을 섭취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적 알코올 섭취량은 결코 적지 않은 수준이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로버트 더들리 교수는 "겉보기에는 낮은 알코올 도수처럼 보이지만, 침팬지들의 엄청난 과일 소비량을 고려할 때 총 알코올 섭취량은 상당히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침팬지가 하루에 섭취하는 14g의 에탄올은 알코올 도수 5% 맥주 355ml와 동일한 양이다. 침팬지의 평균 체중 40kg과 인간의 평균 체중 70kg을 비교하면, 침팬지가 사실상 매일 맥주 한 잔을 마시는 셈이라고 연구진은 밝혔다.
흥미롭게도 이들 침팬지는 지속적인 알코올 섭취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붉어지거나 비틀거리는 등의 명확한 취기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더들리 교수는 "침팬지들이 실제로 알코올의 영향을 체감하려면 배가 팽창할 정도로 과일을 먹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한 발효된 과일을 여러 시간에 걸쳐 조금씩 채집해 먹기 때문에 알코올의 급격한 영향을 받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은 인류의 음주 성향을 설명하는 '취한 원숭이' 가설에 중요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 이론은 현재 인간들이 알코올을 선호하는 습성이 수백만 년 전 영장류 조상들이 에너지가 풍부한 발효 과일을 찾아 섭취했던 진화적 유산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더들리 교수가 20여 년 전 처음 제시했던 이 가설은 초기에는 회의적 반응을 받았으나, 최근 들어 다양한 뒷받침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점차 학계의 지지를 얻고 있다.
침팬지의 음주 행태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포착된 바 있다. 2015년 서아프리카 기니에서는 침팬지들이 야자수 수액이 자연 발효된 것을 반복적으로 마시는 모습이 51차례나 관찰됐으며, 일부 개체는 아침 7시부터 밤까지 일정한 패턴으로 음주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지난해 발표된 연구에서는 슬로우로리스를 비롯한 다른 영장류들도 높은 도수의 발효 음료를 마시는 것으로 확인됐다.
과일 속 에탄올은 당분이 효모에 의해 자연 분해되는 과정에서 생성된다. 효모는 과육 내부에서 겉으로 드러나는 부패 징후 없이도 생존하며 번식할 수 있고, 당분을 완전히 분해하지 않은 채 일부를 에탄올 형태로 저장한다. 특히 무화과, 포도, 자두 등 당분이 높은 열대·아열대 과일에는 0.1~0.5% 수준의 알코올이 자연적으로 존재한다.
현재 연구팀은 침팬지들의 실제 체내 알코올 농도를 확인하기 위해 소변 분석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