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환자 불안·공포 뇌 회로 메커니즘 밝혀져…PTSD 치료법 개발 기대

2025.09.17
자폐환자 불안·공포 뇌 회로 메커니즘 밝혀져…PTSD 치료법 개발 기대

국내 연구진이 자폐스펙트럼장애(ASD) 환자들이 겪는 불안과 공포 반응의 뇌 메커니즘을 세포 단위에서 해명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발견은 향후 자폐환자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시냅스 뇌질환 연구단의 김은준 단장(KAIST 생명과학과 석좌교수) 연구진은 자폐환자에서 동반되는 심각한 불안과 공포 증상의 원인을 뇌 신경회로 차원에서 최초로 해명했다고 발표했다.

자폐스펙트럼장애는 사회적 교류 부족과 소통 장애, 반복 행동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발달장애다. 하지만 환자들은 주요 증상 이외에도 심각한 정서적 문제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일부 환자는 작은 환경적 변화나 일상의 스트레스에도 과민반응을 보이며 PTSD 유사 증상을 나타내지만, 지금까지 정확한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뇌 발달과 신경가소성을 담당하는 핵심 요소인 NMDA 수용체에 집중했다. 이 수용체를 구성하는 GluN2B 단백질은 초기 뇌 발달 시기에 신경회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이 단백질의 생산을 담당하는 GRIN2B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자폐를 포함한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이 나타날 수 있다.

연구팀은 실제 자폐환자에서 확인된 GRIN2B 유전자의 C456Y 돌연변이를 보유한 실험용 생쥐를 활용했다. 실험 결과, 돌연변이 생쥐들은 위험한 상황을 경험한 후 공포 기억을 쉽게 제거하지 못하고 오랜 기간 과도한 불안과 공포 증상을 보였다.

핵심적인 발견은 뇌의 기저편도체 부위에서 나타났다. 감정 조절과 공포 기억 제거를 담당하는 이 뇌 영역에서 흥분성 신경세포들이 트라우마 이후 장기간 비활성화 상태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더욱 주목할 만한 결과는 화학유전학적 방법을 통해 기저편도체의 흥분성 신경세포를 인위적으로 자극했을 때 나타났다. 억제되어 있던 신경 신호 전달이 정상으로 회복되면서 공포 기억이 적절히 소거되고 장기적인 공포 반응도 현저히 감소했다.

김은준 단장은 "자폐환자의 PTSD 유사 증상이 기저편도체 내 흥분성 신경세포의 지속적인 억제 상태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세포, 시냅스, 뇌 회로 차원에서 처음으로 입증한 연구"라며 "기저편도체 활성 조절을 통한 자폐환자의 PTSD 관련 치료 전략 수립에 핵심적인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성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