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 시대 핵심 자원인 양질의 데이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당국이 가명정보 이용 장벽을 대대적으로 해소한다고 발표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24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가명정보 제도·운영 혁신방안'을 공개했다. 이는 15일 대통령 주재 '제1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 따른 후속 대응책이다.
2020년 시행된 가명정보 제도는 정보주체 승낙 없이도 개인정보를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구감소지역 생활인구 분석, 전기차 충전소 위치 선정, 보이스피싱 탐지 AI 기술개발 등에 적용되어왔다. 하지만 활용도는 여전히 저조한 상황이다. 2024년 개인정보 보호·활용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가명정보를 제공한 경험을 가진 공공기관은 전체 응답기관의 2%에 그쳤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평균 310일이라는 긴 결합 과정이 연구진과 기업들의 적극적 활용을 저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내년부터 가명처리 위탁이 가능한 원스톱서비스를 시작한다. 공공기관이 별도의 전문인력 없이도 가명처리가 가능하도록 실무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방침이다. 개인정보위 지정 공신력 있는 전문기관이 가명처리 적정성을 확인해줌으로써 데이터 제공기관의 법적·행정적 부담을 상당히 경감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법 적용의 모호함 속에서 개인정보위가 행정조치 대상 여부를 즉시 회신하는 '가명정보 비조치 의견서'도 연내 시행한다. 명확한 지침 제공을 통해 현장이 체감하는 불확실성을 해소한다는 계획이다. 행정안전부는 올해부터 685개 행정·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평가에서 가명정보 제공 성과를 가산점 항목으로 적용한다. 올해 12월까지는 '가명정보 처리 수수료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기관들이 수수료 수익으로 가명처리 비용을 직접 충당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다.
가명처리 과정도 간소화된다. 개인정보위는 '데이터 위험도'와 '처리환경의 취약도'를 기준으로 위험 등급이 낮은 사안에 대해서는 서면심의나 담당자 적정성 검토로 심의를 대신할 수 있는 간편한 절차를 준비한다. 가명처리 시 필요한 서류도 기존 최대 24종에서 최소 13종으로 대폭 통합한다.
이미지, 영상 등 비정형 데이터의 경우 대규모 가명처리 후 전수조사 대신 표본조사를 통해 가명처리 수준의 적절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공공기관 내 가명정보 제공 과정도 효율화한다. 연구자가 더 이상 여러 부서를 돌아다니지 않고 총괄부서에 한 번만 신청하면 안내받을 수 있도록 올해 11월까지 '공공기관 가명정보 제공·관리 체계에 관한 규정'을 총리 훈령으로 제정한다.
가명처리 적정성 심의위원회의 구성, 운영 등에 관한 사항도 법제화할 예정이다. 그동안 심의위원회 운영 근거가 가이드라인에 규정되어 기관별로 자율에 맡겨짐에 따라 가명처리 수준이나 절차가 제각각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되어왔다. 연내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을 마련해 추진한다.
개인정보위가 직접 데이터 처리 환경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개인정보 이노베이션존' 운영도 확대·강화한다. 내년부터는 이노베이션존 간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연계하여 지역적 제약을 극복하고 보다 다양한 정보가 자유롭게 결합·분석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현재 2% 수준에 머물러 있는 가명정보 제공 경험이 있는 공공기관 비중을 2027년까지 50%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데이터 제공 협의부터 데이터 결합, 기관 외 반출까지 평균 310일 걸리던 기간도 2027년까지 100일 이내로 단축한다.
고학수 개인정보위원장은 "AI 시대에는 양질의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해 혁신을 촉진하는 것이 곧 국가의 핵심 경쟁력"이라며 "가명정보 활용에 수반되는 부담은 줄이고 절차는 합리화하여 현장에서 데이터를 더 쉽고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