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인공지능 스타트업 '파일론' 창업자 마티 카우사스는 링크드인에 "3주 동안 매주 92시간씩 근무했다"는 글을 올렸다. 올해 단 한 차례 휴가를 떠났지만 업무 걱정으로 예정보다 일찍 복귀했던 그의 목표는 10년 내 회사를 100억달러 규모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의 젊은 AI 창업자들 대부분이 이처럼 수면과 여가, 음주까지 포기하며 업무에만 몰두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와 샘 올트먼 같은 성공한 창업가의 뒤를 잇기 위해 대학을 그만둔 이들에게는 시간이 곧 자산이다. 극한의 근무 문화는 중국의 '9·9·6'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워라밸'이 사라진 실리콘밸리 청년 창업가들을 집중 조명했다. 1조달러 규모 기업 창조라는 야망을 품고 노트북 외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AI 금융인프라 스타트업 '코기'의 공동창업자 니코 라쿠아는 통근 시간을 아끼려고 아예 사무실에서 거주한다. 그의 채용 기준은 '주 7일 근무 의지가 있는 인재'다. 직원 40명 중 30명이 전직 창업가여서 근무 시간에 대한 이견이 거의 없으며, 최근 신규 입사자에게는 사무실용 침대 매트리스를 증정했다고 밝혔다.
라쿠아와 함께 코기를 설립한 에밀리 유안은 사무실 밖에서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다른 창업가들과 함께 운동하며 투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술집에서 음주하는 것보다 시간 낭비는 없다"며 "스탠퍼드대를 중퇴하면서까지 빨리 창업하고 싶었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AI 고객서비스 챗봇 스타트업 '파운더스'의 창업자 하세브 울라는 시간 절약을 위해 사무실을 개조한 기숙사에서 직원 20여 명과 공동거주한다. 식당 이동이나 요리 시간을 단축하려고 하루 한 끼는 배달 음식으로 해결한다.
비디오 편집 AI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키노'를 창립한 루크 이글은 주 7일 근무한다. 그는 "실리콘밸리 창업자들이 많이 하는 9·9·6 방식을 약간 변형했다"며 "평일은 12시간 이상, 주말은 반나절씩 일주일 내내 일한다"고 설명했다.
이들 '신세대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청소년기에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 창업 이야기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를 시청하고, 코딩을 배우고, 아이폰을 사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다수가 세계 최대 스타트업 육성기관인 'Y콤비네이터'에 선발되어 창업가의 길로 들어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엔비디아는 올해 현재까지 42개 이상의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벤처 생태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선도 투자자 역할보다는 미래 산업을 주도할 가능성이 높은 업체들을 선별해 여러 분야에 자금을 분산하는 참여형 투자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핵융합 발전 스타트업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 양자컴퓨팅 기술 개발업체 '퀀티넘', 프랑스 생성형 AI 스타트업 '미스트랄AI' 등 고난도 기술 중심의 하드테크 스타트업 비중이 높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를 평가하는 스타트업블링크의 엘리 데이비드 로카 CEO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현재 붕괴되고 있다"며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보조금 정책을 펼치는 정부와 스타트업 간 과도한 밀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부의 과도한 현금성 지원이 스타트업들로 하여금 좋은 제품 개발 대신 보조금 확보에만 집중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한편 국내 스타트업 채용 시장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취업 플랫폼 원티드랩 회원사 데이터에 따르면 정보기술 및 플랫폼 기업의 월간 합격자 수는 2022년 5월 1596명에서 올해 6월 773명으로 절반 가까이 감소했다. 반면 스타트업 취업 지원자는 2022년 160만 명에서 2024년 224만 명으로 급증해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공지능·소프트웨어산업협회(KOSA)와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AI 스타트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전략적 협력에 나서기로 했다. 양 기관은 인재 육성, 해외 진출, 정책 협력, 스타트업 지원사업 기획 등 분야별 협력 방안을 마련해 다음 달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