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항로 시대 막 올라, 내년 국내 시범 운항 시작

2025.09.18
북극 항로 시대 막 올라, 내년 국내 시범 운항 시작

기후변화로 인한 북극 빙하 감소가 새로운 해상 물류 혁명의 문을 열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부정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최단거리 해상경로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 해운업체가 운영하는 정기 컨테이너 항로가 북극해를 통과하며 상업적 네트워크에 본격 편입되는 역사적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정부는 북극 경로 개척을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하고 내년부터 시범 운항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해양수산부는 올해 대비 670% 증액된 610억원 규모의 예산을 편성해 차세대 쇄빙선 건조에 나서며, 북극 항해가 가능한 선박 건조 지원금과 극지 해기사 양성 프로그램도 병행 추진할 계획이다.

북극 경로의 가장 큰 매력은 운송 효율성이다. 부산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의 거리가 기존 수에즈 운하 경유 시 22,000km에서 15,000km로 약 32% 단축되며, 운항 기간도 32일에서 18일로 2주 이상 줄어든다. 연료비 역시 25-35% 절감되어 선박 한 척당 총 운송비용이 73만-75만달러에서 49만-60만달러로 20% 이상 감소하는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정학적 측면에서도 북극 경로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의 홍해 선박 공격, 대만 해협과 남중국해의 영토 분쟁 등으로 기존 항로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북극 경로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주요국들이 북극 진출에 본격 나서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러시아 의존도와 지정학적 불안정성이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강화되면서 북극 경로 이용 선박이 2021년 85건에서 2022년 43건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서방 선사들이 러시아 해역 통과를 꺼리는 현실적 제약을 지적하고 있다.

경제성 문제도 단순하지 않다. 거리 단축이 반드시 수익성 증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북극 경로에는 중간 기항지가 부족해 화물 적재율을 높이기 어렵고, 겨울철 결빙으로 인한 계절적 제약도 상당하다. 또한 선박 보험료 상승, 인프라 부족, 각종 환경 규제 등이 추가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북극 항로의 잠재력은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북극 항로 총 물동량이 3,790만톤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으며, 환적 화물은 308만톤으로 2016년 대비 15배 증가했다. 북극이사회는 이르면 2040년 여름철 북극해에 얼음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국내 항만들도 북극 시대를 대비한 차별화 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부산항은 2030년까지 진해신항에 초대형 스마트 항만 시설을 구축하고, 여수광양항은 LNG 벙커링과 해상 환적 허브로 육성하며, 울산항은 에너지 공급 거점항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북극 항로가 기존 수에즈 경로를 완전 대체하기보다는 틈새 시장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특히 러시아 에너지 자원 운송과 중국발 유럽행 화물 운송에서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 허브 항만을 중심으로 한 환적 모델이 성공한다면 북극 항로의 상업적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15-17세기 대항해 시대가 세계 무역 지형을 바꾸었듯이, 21세기 북극 항로 개척은 새로운 글로벌 물류 패러다임을 만들어갈 전망이다. 정부와 업계의 체계적 준비와 국제 협력이 성공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