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원·달러 환율이 매달 위험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1400원대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 상승세가 멈추지 않아 외환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 드러나고 있다.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4.9원 급등한 1398.5원으로 개장해 심리적 저항선인 1400원에 육박했다. 장중에는 1399원대까지 치솟으며 지난 5월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으나, 오후 들어 상승폭을 줄이며 1392.6원에 거래를 마감했다. 그러나 야간장에서는 1399.5원까지 오르는 등 1400원 돌파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환율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달러 강세에 있다. 영국의 재정적자가 838억 파운드로 팬데믹 이후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파운드화가 급락하자, 상대적으로 달러에 대한 선호가 높아졌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97.7대까지 상승했다. 또한 연준의 9월 금리 인하가 매파적으로 해석되면서 추가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약화된 것도 달러 강세를 뒷받침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 외환시장의 구조적 취약성이다. 한국은행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리스크 충격에 대한 우리나라의 환율 변동성은 2.11%포인트로 신흥국 평균 1.68%포인트를 상회한다. 이는 국제적 불안 요소가 발생할 때마다 원화가 다른 통화보다 과도하게 변동한다는 의미다.
통화정책 측면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취임 후 통화량이 급격히 증가해 2024년 4045조원에서 2025년 7월 4344조원까지 늘어났다. 동시에 화폐유통속도도 2019년 0.6000에서 2024년 0.6320으로 빨라지면서 원화 가치 하락 압력이 가중됐다.
한미 관세 협상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조성을 놓고 양국 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로이터 인터뷰에서 "통화스와프 없이 미국 요구대로 3500억 달러를 현금 투자할 경우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국내 증시로 꾸준히 유입되고 있지만 환율 하락 효과는 제한적이다. 9월 들어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순매수한 금액은 7조2000억원에 달하지만, 개인과 기관의 해외투자 증가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면서 상쇄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의 1400원대 진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망하고 있다. 다만 외환당국의 개입 우려와 분기말 수출기업들의 달러 매도 물량이 환율 상단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