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코홀딩스가 일본제철과의 50여 년간 이어온 역사적 파트너십에 종지부를 찍고 있다. 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의하면, 포스코홀딩스는 이날 장 종료 이후 보유하던 일본제철 주식 1.5%(1569만주) 가운데 절반에 해당하는 785만주를 시간 외 대량거래로 처분했다.
이번 거래를 통해 포스코홀딩스는 약 253억엔(2388억원)의 현금을 확보하게 되었다. 매도 가격은 당일 마감가 3222엔 대비 1~2.5% 할인된 수준에서 형성되었으며, UBS와 뱅크오브아메리카가 주관업체를 담당했다.
이는 올해 3월 발표한 일본제철 보유 지분 전면 처분 계획의 첫 단계 실행이다. 포스코홀딩스는 지난해 사업보고서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보유해온 4670억원 상당의 일본제철 주식을 매각 예정 자산으로 분류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잔여 지분도 조만간 같은 방식으로 정리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양사의 인연은 196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업 기반이 전무했던 한국에서 종합철강업체 설립은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소설 '불모지대'의 실제 모델인 세지마 류조 전 이토추상사 회장이 일본 총리와 야하타제철(현 일본제철) 등을 설득하며 전면적 기술 지원을 성사시켰다. 대일청구권 자금의 25%가 포항제철소 건설에 투입되었고, 일본제철은 핵심 기술자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이후 포스코는 독자적 기술개발을 통해 글로벌 철강 강자로 도약했고, 1998년 민영화 시점부터 양사는 상호 지분을 보유하며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2006년 지분 확대를 통해 포스코홀딩스는 일본제철 지분 1.5%를, 일본제철은 포스코홀딩스 지분 3.42%를 각각 취득하며 '철강 동맹'을 공고히 했다.
그러나 이 견고한 관계는 2012년 전기강판 기술 유출을 둘러싼 법정 분쟁으로 균열이 시작되었고, 지난해 일본제철이 US스틸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포스코홀딩스 지분 전량을 약 1조1000억원에 처분하면서 본격적인 해체 수순에 돌입했다.
포스코그룹은 장인화 회장 체제 출범 이후 비주력 사업 정리와 신성장 동력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11건의 구조개편으로 3500억원의 현금을 창출했으며, 하반기 추가로 1조원의 현금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확보된 자금은 2차전지 소재와 수소 등 미래 성장사업에 투입될 예정이다.
한편 일본제철은 미국 현지화 전략의 일환으로 US스틸 인수를 추진 중이며, 포스코는 철강업체에서 종합 소재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 관계자는 "상호 합의에 따른 지분 정리이며, 향후에도 양사 간 전략적 협력관계는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관계 해소를 동맹 파기보다는 변화하는 글로벌 환경에서 각자의 생존전략을 추구하는 '성숙한 이별'로 평가하고 있다. 스승과 제자로 시작된 두 철강 대기업이 이제 글로벌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자로 마주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