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만찬장소, 국립경주박물관→5성 호텔로 급작 변경…80억 투입 신축건물은 '빈껍데기'

2025.09.21
APEC 만찬장소, 국립경주박물관→5성 호텔로 급작 변경…80억 투입 신축건물은 빈껍데기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개최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공식 만찬 개최지가 돌연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 19일 APEC 준비위원회 제9차 회의를 통해 만찬장을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보문관광단지 내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로 전면 수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장소 변경의 핵심 배경에는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참석 규모가 자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경주 방문이 확정되면서 글로벌 CEO들의 참가 신청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계획했던 220여 명 규모를 400여 명으로 대폭 확대해 각국 대표단과 경제계 인사, 국내 주요 인물들을 초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애초 만찬 행사장으로 선정된 경주박물관 부지에는 80여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한옥 양식의 신축 시설을 조성해왔다. 지난 3월 설계 공모를 거쳐 석조 계단과 처마 등 전통 건축 요소를 반영한 설계안이 확정됐고, 6월부터 본격적인 건설 작업에 들어가 현재 98% 가까운 진척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실시된 정부 합동 안전 점검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다. 신축 건물 내부에는 별도의 화장실 시설이나 음식 조리 공간이 마련되지 않아 참석자들이 수십 미터를 걸어 박물관 본관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또한 외부에서 조리한 음식을 운반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와 함께 전기·소방 분야의 안전성 검증도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CEO 서밋과 연동된 각종 경제 행사를 위한 공간 확보 문제도 변경 요인으로 작용했다. 1700여 명의 글로벌 기업인들이 경주를 찾을 예정인 가운데, 각종 회의와 포럼, 네트워킹 이벤트, 문화 프로그램 등을 수용할 충분한 시설이 부족했던 것이다.

새롭게 결정된 라한셀렉트 경주 호텔은 정상회의가 진행될 경주화백컨벤션센터와 동일한 보문관광단지에 위치해 있어 정상들의 이동 거리가 1.8km에 불과하다. 다양한 부대 시설과 편의 시설을 완비한 5성급 호텔로서 안정적인 행사 운영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대해 경주시와 지역 주민들은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다. 당초 국립경주박물관에서의 만찬은 신라 금관과 성덕대왕신종 등 천년 고도의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경주를 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각국 정상들의 기념 촬영 장면이 국제 언론을 통해 송출되면서 경주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에서는 "성공적인 행사를 위한 종합적 판단을 존중하지만, 경주만의 상징성과 특색을 세계에 널리 알릴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따라 만찬장 무대 배경에 첨성대, 불국사 다보탑, 황룡사 9층목탑 등을 소재로 한 미디어 아트나 디지털 콘텐츠, 지역 특산품을 활용한 메뉴 구성, 신라 전통 공연 등을 통해 '경주다움'을 반영해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당초 만찬장으로 건설된 박물관 내 신축 건물은 국내외 기업 간 비즈니스 네트워킹 공간과 방산, 조선, 인공지능 등 국가 전략 산업 관련 퓨처테크 포럼 등 경제 행사장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김상철 APEC 준비지원단장은 "역대 최대 규모로 예상되는 이번 정상회의와 CEO 서밋을 위해 경주의 공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해 초격차 K-APEC을 구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