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 근로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수준으로 감축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체가 24일 공식 가동에 들어갔다. 고용노동부는 이날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의 출범식을 개최하고, OECD 평균인 1708시간 수준까지 연간 근로시간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한국의 연간 실근로시간은 1859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151시간 길어, 주 5일 기준으로 매일 약 35분씩 더 일하는 것과 같은 수준이다. 이러한 장기간 근로 구조는 일과 생활의 균형, 산업 안전사고 예방, 근로 효율성 증대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진단이다.
추진단은 배규식 전 한국노동연구원장과 김유진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이 공동으로 이끌며, 근로자·사용자 대표와 전문가 등 총 17명으로 구성됐다. 특히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조가 모두 참여하고, 사용자 측에서는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가 함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주요 논의 사안으로는 포괄임금제 원칙적 폐지, 연차 사용 활성화 등 제도적 개선책과 함께 근로 효율성 증진, 취업률 향상, 직장과 가정의 조화 방안 등이 포함된다. 추진단은 주 4.5일제 시행 방안을 별도 워킹그룹으로 운영하며, 업종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법을 모색할 예정이다.
첫 회의에서는 한국은행의 인공지능 활용 효과 분석 결과가 발표됐다. AI 도입 시 전체 근로시간이 평균 3.8%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주 40시간 기준 약 1.5시간 단축 효과에 해당한다. 또한 경력이 짧은 근로자일수록 시간 절약 효과가 크고, 업무 숙련도 격차를 줄이는 평준화 효과도 확인됐다.
현장 사례로는 에너지저장장치 업체 비에이에너지의 격주 금요일 오전 퇴근제와 제약회사 한독의 생산라인 자동화를 통한 초과근무 31% 감축 사례가 소개됐다. 다만 일부 기업의 경우 주 4일제 시범 운영 과정에서 업무 효율성 저하와 운영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는 점이 언급됐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은 "실근로시간 단축은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양적 근로에서 질적 근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며 "근로자가 시간 자율권을 갖고 탄력적으로 일할 수 있을 때 더 우수한 성과가 나오며, 이것이 기업 경쟁력으로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장기간 저임금 근로 체계와 산업 현장의 기본 패러다임을 바꾸는 작업"이라며 "일자리 감축이 아닌 더 많은 근로자가 함께 발전할 수 있는 일자리 분배로 이어져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추진단은 향후 3개월간 현장 간담회, 국민 참여 토론회 등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후 연말 '실근로시간 단축 로드맵'을 확정 발표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 로드맵을 바탕으로 관련 법령 개정과 지원 정책을 구체화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