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위치한 5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에서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기본 노동조건 준수 수준이 전체 평균을 크게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사업장은 법정 의무사항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실상 '범법지대'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21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기본 노동조건 준수 점수는 100점 만점에 55.6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직장인 평균인 64.6점보다 9점 낮은 수치이며,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의 69.4점과는 13.8점의 격차를 보였다. 공공기관의 경우 72.0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해 소규모 사업장과의 차이가 16.4점에 달했다.
이번 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글로벌리서치가 지난 7월 1일부터 7일까지 전국 만 19세 이상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통해 실시했다. 조사 항목은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 4대 보험 가입, 최저임금 지급, 휴게시간 보장 등 총 20개 기본 노동조건으로 구성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사업장 규모와 무관하게 반드시 지켜야 할 법적 의무조차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 작성 및 교부 점수는 63.2점으로 평균보다 8.1점, 4대보험 가입은 64.9점으로 7.9점, 최저임금 지급은 66.3점으로 4.2점 각각 낮았다.
임금 관련 항목에서도 격차는 뚜렷했다. 임금명세서 교부 점수는 68.9점으로 평균 대비 5.2점 낮았고, 연장수당은 54.8점으로 9.7점, 주휴수당은 53.3점으로 10.4점 차이를 보였다. 휴게시간 보장 점수 역시 56.0점으로 평균인 64.5점보다 8.5점 낮게 나타났다.
퇴사 시 금품 정산 항목에서도 소규모 사업장의 점수는 55.3점으로 평균 65.3점보다 10점, 300인 이상 사업장 71.4점보다는 16.1점 낮았다. 법적으로 14일 이내 지급해야 하는 퇴직금과 급여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직장 내 안전과 관련된 영역에서는 더욱 심각한 격차가 드러났다. 괴롭힘 및 성희롱 예방교육 점수는 47.0점으로 평균보다 14.4점 낮았고, 관련 신고 절차 마련은 46.4점으로 11.9점 차이를 보였다. 출산휴가 보장과 육아휴직 보장 점수는 모두 48.6점으로 평균 대비 각각 13점, 12점 낮았다.
성별 차별 금지 점수도 55.1점으로 평균인 63.2점보다 8.1점 낮게 조사됐다. 고용평등법상 성차별 금지 규정은 사업장 규모와 상관없이 적용되는 사안임에도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실정이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직장갑질119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다수 노동관계법령의 주요 규정이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아 '사업장이 작으면 노동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사회 전반에 확산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김기홍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적용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특정 집단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을 제거하기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에도 근로기준법 확대 적용이 이뤄져야 할 필요성이 충분히 입증됐다"며 "이재명 정부의 핵심 노동 공약이었던 만큼 모든 근로자가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관련 법률 개정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