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보장해달라며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고용허가제 하에서 사업주의 부당한 대우와 폭언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변경 절차 때문에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는 호소가 이어지고 있다.
21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전국이주노동자대회를 개최하고 강제노동 철폐와 근무지 변경 자유 확대를 촉구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전남 영암 돼지농장 자살사건, 나주 지게차 학대사건 등은 차별과 착취를 조장하는 이주노동 체계가 만들어낸 참극"이라며 "이주노동자들은 중개업자에게 수탈당하고 임시거처에서 혹독한 추위를 견디며, 단속에 쫓기고 관리자의 폭력에 시달리며 사업주에게 예속된 삶을 살고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서울신문이 김주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분석한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상담센터 자료에 따르면, 사업장 변경 관련 어려움을 호소하는 민원이 2022년 4만4862건에서 지난해 12만2670건으로 거의 3배 증가했다. 올해 7월까지도 이미 7만4045건이 접수되는 등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남 자동차 부품업체에서 근무하는 네팔 출신 A씨는 "아파도 쉬지 말라"는 사업주의 폭언과 "작업속도를 두 배로 높이지 않으면 이탈신고를 하겠다"는 위협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고 증언했다. 비전문 취업비자로 입국해 부당처우 시 근무지 변경이 가능하지만 입증과정의 어려움과 사업주와의 협의 난항으로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상 E9 비자 소지자들은 고용주의 근로조건 위반이나 부당처우, 상해 등의 사유 발생 시 근무지 교체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사업주들이 변경 요구를 거부하는 일이 빈번하고, 관할 고용센터에서도 서류 준비부터 사유 입증까지 과정이 길고 복잡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다야 라이 이주노조 위원장은 "사업주들의 보복이 두려워 이주노동자들은 침묵을 강요받고 있으며, 극단적인 경우 자살로 내몰리기도 한다"며 "강제노동의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근무지 변경의 자유와 모든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허가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열악한 환경을 견디지 못해 일터를 이탈할 경우 불법체류자로 전락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된다. E9 비자로 입국한 이주노동자 중 미등록 체류자가 된 인원이 올해 8월 기준 5만1821명에 달하며, 2021년 이후 매년 5만명을 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종선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국내 근로감독 인력 부족으로 이주노동자 사업장은 관리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며 "근무지 변경 제한 기준을 완화하고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해야 인권의 기본선을 확보하고 불법체류자 양산도 줄일 수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