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역대 최연소 교수 임용 기록을 세웠던 국내 저명 학자가 미국의 경제 제재 대상에 포함된 중국 대학교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작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한국 학계 권위자들의 중국 진출 행렬에 정년 이후 연구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학기술 분야 소식통들이 23일 밝힌 바에 따르면, 통신과 신호처리 영역의 권위자인 송익호 한국과학기술원 전기전자공학부 명예교수가 근래 중국 청두 전자과학기술대학 기초첨단과학연구소 교수직에 취임했다. 해당 교육기관은 군사 목적으로 활용 가능한 전자전 장비 설계 프로그램과 전장 시뮬레이터 등의 기술을 개발한다는 근거로 2012년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대상 목록에 등재된 바 있다.
송 명예교수는 1992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당시 만 28세의 나이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진에 합류하며 최연소 임용이라는 화제를 모았고, 이후 37년 동안 연구 활동을 지속해왔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 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전기전자공학회 펠로우 등을 역임하면서 국제적으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보도에 의하면 송 교수는 진로 변경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금년 2월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정년을 맞이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은퇴 후 지속적인 연구 활동을 위한 선택으로 분석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에서는 70세까지 교육과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정년 후 교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으나, 매년 3억원 이상의 연구 과제를 확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설정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작년부터 이기명 前 고등과학원 부원장, 이영희 성균관대학교 HCR 석좌교수, 홍순형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김수봉 前 서울대학교 교수 등 정년을 맞은 학계 거물들이 연달아 중국으로 거처를 옮기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우수 인력 해외 유출을 차단하기 위한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어왔다.
과학기술한림원이 지난 5월 정회원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응답자의 61.5%가 최근 5년간 해외 연구 기관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으며, 이 중 82.9%가 중국 기관들로부터의 제안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65세 이상 연령대의 경우 72.7%가 해외 기관의 영입 제의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돼 더욱 높은 비율을 보였다.
이들 중 51.5%가 해외 기관의 제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고 답변했으며, 그 배경으로는 국내 석학 활용 체계의 부재를 지적하는 경우가 다수를 차지했다. 국내 최고 수준 연구자들의 해외 유출 원인으로는 정년 이후 석학 활용 제도의 미흡함을 꼽은 응답이 82.5%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