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망가졌으면 좋겠어"… 동경과 시기가 얽힌 두 친구의 30년 이야기

2025.09.20
"네가 망가졌으면 좋겠어"… 동경과 시기가 얽힌 두 친구의 30년 이야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이 공개 일주일 만에 국내 인기 순위 1위를 기록하며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류은중(김고은)과 천상연(박지현)의 복잡미묘한 우정을 그린 이 작품은 10대부터 40대까지 두 사람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인다.

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조영민 감독과 SBS '달콤한 나의 도시'의 송혜진 작가가 손잡은 이번 작품은 총 15부작으로, TV 드라마에서도 드물어진 긴 호흡으로 인물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199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이어지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삐삐, PC통신, 필름카메라 등 레트로 소품들이 추억을 자극한다.

어린 시절 처음 만난 순간부터 상연은 빛나는 존재였다. 전직 장관인 할아버지를 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서울 명문 사립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우등생이었다. 반면 엄마와 단둘이 반지하에서 사는 은중에게 상연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정작 상연은 성격이 밝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은중을 부러워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상연의 오빠 천상학(김재원)의 죽음으로 한 번 단절되지만, 대학 동아리에서 재회한다. 오빠를 잃고 가세가 기울어진 상연은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월세 8만원짜리 방에서 힘겹게 생활한다. 예전 은중이 자신을 반지하 집에 데려갔듯, 이번엔 상연이 열악한 자신의 처지를 은중에게 보여준다.

30대가 된 두 사람은 함께 영화를 만들며 다시 만나지만, 여전히 위태로운 관계를 이어간다. 상연에게 은중은 언제나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이자 '내가 사랑받고 싶은 이이에게 사랑받는 사람'이다. 결국 상연은 은중의 소중한 작품을 빼앗고 사라진다. "네가 멀쩡한 게 싫어. 망가졌으면 좋겠어, 나처럼"이라는 상연의 절규에는 파괴적 욕망이 담겨 있다.

영국의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에 따르면, 질투는 이미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인 반면, 시기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빼앗거나 상대를 망가뜨리려는 욕망으로 이어지는 파괴적 감정이다. 상연의 마음속에는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선 깊은 시기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은중은 상연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그 답은 어린 시절 받은 사랑에 있다. 상연의 어머니 현숙(서정연)은 훌륭한 교사지만 딸에게는 엄격하기만 했다. 반면 은중의 어머니 순영(장혜진)은 평범하지만 따뜻하고 언제나 딸의 편이 되어주었다. 이런 무조건적 사랑이 은중에게 '나도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마흔셋이 된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며 조력자살을 위한 스위스 여행에 동행해달라고 부탁하는 상연을 통해 작품은 절교와 마지막 부탁이 공존할 수 있는 특별한 우정이 있음을 보여준다. 김고은과 박지현은 각 연령대를 진짜처럼 연기하며, 10대 역할을 맡은 도영서와 박서경도 출중한 연기력을 선보인다.

조영민 감독은 "누군가를 좋아하면서도 미워하는 모순된 감정을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하려고 늘 고민했다"며 "두 사람의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끼게 할 수 있는 톤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현실에서 우리가 친구에게 한 번쯤 느꼈을 동경과 열등감, 애증의 복잡한 감정들을 솔직하게 그려낸 '은중과 상연'은 매 편마다 깊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배속 재생하지 않고 천천히 음미하며 봐야 할 작품으로, 진한 우정의 쓰디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