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AI 시대에도 스토리텔링 본질은 불변해야"

2025.09.18
봉준호 감독 "AI 시대에도 스토리텔링 본질은 불변해야"

1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개최된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글로벌 미디어 컨퍼런스에서 봉준호 감독이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창작의 핵심 가치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혼돈의 시대, 경계를 넘는 혼종'을 주제로 한 이날 행사에서 그는 마크 톰슨 CNN 최고경영자와의 대담을 통해 영화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했다.

봉 감독은 OTT 플랫폼의 확산으로 극장 관람객이 줄어든다는 지적에 대해 "영화를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극장이 더 애정스럽다. 관객이 임의로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없기 때문"이라면서도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빠르게 움직이는 지하철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영화를 감상한다"고 현실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제 제작자들은 너무 흥미진진해서 절대로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특성에 기대지 말고"라고 강조했다.

급속히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해서는 "텔레비전, 인터넷, 케이블, 스트리밍 등 영화에 도전하는 새로운 매체들이 계속해서 등장했고, 그때마다 영화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졌다"면서도 "그러나 훌륭한 스토리텔링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는 핵심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름 자체가 장르'로 불리는 봉 감독의 작품 세계에 대해서는 특유의 솔직함을 드러냈다. "마케팅 담당자나 배급업체에서 항상 내 작품이 어떤 장르에 속하는지 묻는데, 매번 한 마디로 답하기 어려워 곤란함을 겪는다"면서도 "이런 장르 횡단적 특성이 오히려 내 영화의 장점"이라고 자평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단일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괴물'은 괴수영화의 문법과 가족 멜로드라마,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결합했고, '기생충'은 코미디와 스릴러, 호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오갔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인공지능에 대해서는 "설레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존재"라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했다. 그는 "신작 '미키 17'에서 한 화면에 두 명의 미키(로버트 패틴슨)가 등장하는 장면 제작에 AI 기술을 활용했다"며 "기술이 인간성을 어떻게 위협하는지를 다룬 영화에서도 AI를 도구로 사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K콘텐츠의 글로벌 성공에 대해서는 다양한 문화와의 융합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음악 분야의 경우, 업계 전체가 다른 국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방적 자세를 보여왔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제작한 곳이 한국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이 보여주듯, 외국 회사들이 자연스럽게 한국 관련 콘텐츠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이날 컨퍼런스에는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을 비롯해 국내외 미디어 관계자들과 일반인 등 약 400명이 참석했다. 톰슨 CEO는 대담 내내 "봉 감독은 나의 영웅"이라며 팬심을 드러냈고, 봉 감독이 "앞으로 제작할 영화의 뉴스 장면에서 CNN 로고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즉석에서 승낙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