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근현대 미술사의 거장 이중섭의 걸작 '소와 아동'이 반세기를 훌쩍 넘긴 70년 만에 경매장에 등장해 35억2천만원이라는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케이옥션이 24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본사에서 개최한 9월 정기 경매에서 이 명작은 출발가 25억원에서 시작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최종 낙찰가를 기록했다.
1954년에 제작된 이 작품은 바닥에 머리를 댄 채 엎드려 있는 소의 뒷다리 사이에 한 아이가 앉아 있는 장면을 담고 있다. 가로 64.5cm, 세로 29.8cm 크기의 화폭에는 이중섭 특유의 역동적이고 강렬한 필치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어 작가의 예술 세계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이 그림은 1955년 미도파 화랑에서 처음으로 대중 앞에 선보인 이후 줄곧 개인 컬렉션으로 보관되어 왔다. 최근 타계한 정기용 전 원화랑 관장이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간직해온 것으로, 그동안 미술품 유통 시장에는 한 차례도 등장한 적이 없었다. 다만 1972년 현대화랑의 유작 전시회를 비롯해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대규모 회고전 등 이중섭과 관련된 주요 전시회에는 빠짐없이 출품되어 많은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이번 경매는 최근 침체된 미술 시장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끌었다. 전화, 서면, 현장, 온라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한 응찰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2천만원씩 호가가 상승하며 불과 2분여 만에 30억원대를 돌파하는 등 활발한 경쟁이 벌어졌다. 김환기 등 다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이 연이어 유찰되는 상황에서도 이 작품만큼은 예외적인 열기를 보여줬다.
이중섭의 '소' 연작은 현재 약 10여점만이 현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희소성이 매우 높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공공 기관에서 영구 소장하고 있어 개인 수집가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경매 출품은 미술계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이번 거래가격은 지금까지 경매에서 형성된 이중섭 작품의 최고 기록에는 미치지 못했다. 2018년 서울옥션에서 같은 '소' 연작 중 한 점이 47억원에 성사된 바 있어, 당시 기록 갱신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최고가 달성에는 이르지 못했다.
한편 이날 경매에서는 다른 작품들의 명암이 엇갈렸다. 여러 차례 경매에 나왔지만 주인을 찾지 못했던 김창열의 대형 '물방울' 작품이 3억9천만원에 낙찰되는 성과를 거두었고, 이성자의 '운하의 꽃'도 예상가를 상회하는 6천200만원에 거래됐다. 반면 박수근의 풍경화 '산'은 출발가인 12억원에 그쳤으며, 일부 출품작들은 입찰자를 찾지 못해 유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