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숨겨진 주역, '목재'의 시대를 재조명해야

2025.09.19
인류 문명의 숨겨진 주역, 목재의 시대를 재조명해야

인간의 역사를 다루는 박물관에서는 구석기에서 신석기, 청동기를 지나 철기로 이어지는 시대 구분을 보여준다. 이는 1831년 덴마크 고고학자 크리스티안 톰센이 도입한 분류 방식으로, 인류가 활용한 도구의 재료를 중심으로 문명사를 나누는 전통적 서사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방법은 관람객들로 하여금 인간이 처음 제작한 도구가 돌을 가공한 것이었다는 잘못된 인상을 심어준다.

영국 헐대학교 생물과학과 객원교수인 롤랜드 에노스는 그의 저서 '나무의 시대'에서 석기-청동기-철기라는 세 재료 중심의 역사 인식에서 탈피해 '목재 중심적' 시각으로 인류사를 재평가할 것을 제안한다. 식물학과 생체역학 분야의 전문가인 그는 나무야말로 인류의 장대한 진화와 문명 발전을 뒷받침한 핵심 소재였다고 주장한다.

인류가 제작한 최초의 도구가 석기라는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것이 현재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인공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류가 돌을 가공하기 이전부터 나무로 만든 막대기로 땅을 파헤쳐 뿌리와 덩이줄기를 채취하거나, 나뭇가지를 다듬어 창을 제작하여 사냥에 활용했다. 유기물질의 특성상 시간이 흐르면 분해되어 사라지는 목재 도구들은 고고학적 증거로 남지 못했을 뿐이다.

현존하는 가장 고대의 목제 유물은 1911년 영국 에식스에서 출토된 45만 년 전 클랙턴 창으로, 나무가 마르지 않은 상태이거나 화염에 그을린 후 석기 날로 끝부분을 예리하게 가공한 것으로 분석된다.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지펴 맹수들로부터 보호받고 음식을 조리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중요한 목재 활용 사례지만, 이 또한 물적 증거로는 남아있지 않다.

석기시대가 개시된 이후에도 인류는 지속적으로 목재를 사용했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 지위를 획득할 수 있었던 핵심 요인은 목재로 제작한 도구, 특히 목재 무기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목재와 석재를 결합한 복합 창과 가죽끈 및 목재를 이용한 활은 매우 효과적인 무기로서 인류를 최상위 포식자로 만들어주었다. 이로 인해 지구 각지에서 매머드, 마스토돈, 거대 아르마딜로, 대형 캥거루 등 대형 동물들의 대규모 멸종이 발생했다.

돌낫과 곡괭이 같은 연마 석기 덕분에 인류는 삼림을 개간하고 토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통나무 내부를 파낸 독목선이나 목조 골조에 동물 가죽을 덧씌운 배를 개발하여 강과 바다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신석기 다음의 청동기시대에는 창끝, 단검, 방패, 투구 등의 무기류와 다양한 농기구가 발달했는데, 저자는 금속 제련에 불가결한 숯의 원료가 목재라는 점에 주목한다. 금속 때문에 사람들은 오히려 목재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고 목재 사용량도 증가했다. 금속뿐 아니라 토기와 유리 같은 신소재 등장에도 숯은 필수 요소였다.

피라미드 건설을 위한 석재 절단 작업에도 목재가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대규모 건축물들의 역사는 석조 건축을 위한 효율적인 목재 활용 기법의 발달사로 봐도 무방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순수한 석조 건물은 안정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건축가들이 석조 구조 내부에 목조 구조를 은밀히 배치하는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목재는 지속적으로 습기가 유지되는 환경에서도 부패에 강한 내성을 가지므로 베네치아와 암스테르담, 함부르크의 건물 대부분은 목재 말뚝 위에 세워져 있다. 현재도 미국인 대부분이 목조 구조의 주택에 거주할 정도로 목조 건축은 여전히 높은 선호도를 유지하고 있다.

악기야말로 다른 재료로 대체하기 힘든 목재의 독점 영역이다. 목재는 가벼우면서도 견고해서 음향을 고속으로 전달하여 고주파수의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 현악기의 최고품으로 인정받는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의 사운드보드는 알프스산 가문비나무로 제작되었는데, 악기의 맑은 음색을 가능하게 한 목재의 섬세한 결이 16-18세기 소빙기의 기후 조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목재 손잡이를 단 공구를 사용한 메이슨, 목재로 건설된 물레방아와 풍차에서 생활하며 작업한 밀러, 그리고 숯불을 사용하는 유리 제작자 글레이저와 도공 포터, 각종 분야의 기능공 스미스 등의 성씨에서 알 수 있듯 철기시대는 목재가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했던 시기였다.

강철과 철근 콘크리트, 플라스틱 등 새로운 소재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목재 생산량과 사용량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목재의 유용성과 생명력을 입증하는 증거이지만, 산림 파괴에 따른 환경적 부담에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여전히 3조 그루 이상의 나무가 지구 표면적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열대우림 벌채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 등 나무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콘크리트가 전 지구 탄소 배출량의 약 5%, 강철이 3%를 차지하는 반면 목재는 전체 탄소 배출량의 약 2.3%만을 차지한다. 사람들은 목공예 작업이나 목재를 다루는 동안 마음이 더욱 평온해지고 행복감을 느끼며, 초등학생들은 콘크리트 벽이나 페인트 벽보다 목재 벽일 때 집중력이 높아지고 학습 성과도 향상된다.

저자는 도시의 유휴 공간이나 수익성이 낮은 농지에 나무를 다시 심는 생태복원 운동을 통해 목재의 시대로 회귀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의 진행도 저지하자고 제안한다. 인류가 온화한 기쁨을 선사하는 목재의 시대로 되돌아갈 가능성을 꿈꾸는 그에게 나무의 시대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형이자 미래형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