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불 수교 140주년을 맞이하여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립미술관인 오르세와 오랑주리가 소장한 19세기 거장들의 작품이 국내에 첫 선을 보인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20일 개막하는 이번 특별전시에는 폴 세잔과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유화 51점을 포함해 총 120여 점의 작품과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장품이 우리나라를 찾은 것은 이번이 최초다.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이 미술관은 1930년대 유럽 최고 수집가였던 기욤이 기증한 약 150점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39점이 한국 관람객과 만난다. 국보급 작품들의 안전한 운송을 위해 특수 케이스와 완충재가 제작되었으며, 항공기 4대가 동원되는 대규모 작업이 이루어졌다.
1860년대 파리에서 처음 만난 두 화가는 인상주의라는 공통분모에서 출발했으나 완전히 상반된 예술적 행보를 걸었다. 르누아르는 따뜻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로 일상의 순간과 빛의 떨림을 포착하며 섬세하고 조화로운 화풍을 구축했다. 반대로 세잔은 기하학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으로 대상을 분석하여 엄격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작품세계를 펼쳤다.
전시는 총 6개 구역으로 나뉘어 두 작가의 대조적인 특성을 직접적으로 비교한다. 첫 섹션부터 세잔의 '세잔 부인의 초상'과 르누아르의 '광대복을 입은 클로드 르누아르'를 나란히 배치하여 관람객들이 두 화가의 차이를 즉시 체감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세잔이 아내를 그린 작품에서는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관찰과 기하학적 형태 구현이 돋보이는 반면, 르누아르가 막내아들을 그린 그림에는 부드러운 질감과 따스한 애정이 가득하다.
풍경화에서도 이러한 대비는 선명하게 드러난다. 르누아르는 온화한 색조와 유연한 붓놀림으로 자연의 조화와 대기의 움직임을 표현하며, 세잔은 직선적인 나무와 큰 바위를 화면 전면에 과감히 배치하여 풍경의 구조적 질서를 강조한다. 인물화에서도 르누아르는 주인공과 배경의 자연스러운 융합을 추구하는 반면, 세잔은 인물 주위에 검은 선을 그어 대상을 배경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기법을 사용한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르누아르의 명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다. 프랑스 정부가 처음으로 르누아르에게 의뢰한 이 작품은 화가가 50대 완숙기에 접어들어 파스텔화 1점과 유화 5점 등 총 6점을 제작한 시리즈 중 정부가 최종 선택한 작품이다. 작가의 의도가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이 작품은 르누아르 예술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전시 마지막 구역에서는 두 거장이 20세기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력을 조명한다. 세잔의 분석적 회화 방식은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주의 등장에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르누아르의 색채 감각은 피카소의 고전주의 회귀 시기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세잔은 나의 유일한 스승"이라고 언급한 피카소는 실제로 두 화가의 작품을 직접 소장할 만큼 깊은 존경심을 보였다.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은 세잔의 정물화 '사과와 비스킷'이다. 성경의 아담, 뉴턴과 함께 세상을 변화시킨 세 번째 사과로 불리는 세잔의 사과는 기존의 단일 시점을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하나의 화면에 담는 혁신적 기법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시점 표현법은 전통적 원근법에 균열을 가하며 회화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구조와 형식을 탐구하는 예술 영역임을 입증했다.
교육 프로그램으로는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에 전문가 해설이 진행되며,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교육 과정도 함께 운영된다. 전시는 2026년 1월 25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