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난청, 방치하면 학습능력·인지기능까지 손상

2025.09.21
청소년 난청, 방치하면 학습능력·인지기능까지 손상

학교에서 갑작스럽게 성적이 하락하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이 있다면, 단순한 주의력 결핍이 아닌 '경미한 청력 손실'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성인 기준 25데시벨(㏈), 아동 기준 15~25㏈ 이하의 작은 소리를 인지하지 못하는 경미한 난청이 대인관계와 뇌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미한 청력 손실 환자들이 먼저 직면하는 문제는 '음성 명료도 감소'다. 소리는 감지되지만 단어가 불분명하게 섞여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속삭임, 물방울 소리, 나뭇잎 마찰음, 카펫 위 걸음소리, 자동차 방향등 경고음 등이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여성이나 아동의 음성, 새 지저귀는 소리, 소란한 배경 속 대화도 쉽게 놓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저음보다 고음이 먼저 사라지는 특징을 보인다.

원인은 다양하다. 노화, 소음 노출, 청각기관의 구조적 문제 등이 주요 요인이다. 일부는 조기 치료로 개선 가능하지만, 방치할 경우 뇌의 언어 처리 능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장지원 고려대 안암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경미한 청력 손실 환자는 '들리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며 "아동·청소년의 경우 교실 잡음 속에서 음성 지각, 언어, 독해, 작업 기억력이 저하되고, 이로 인해 학습 성취도가 낮아지거나 행동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청력 저하는 조용한 공간보다 배경 잡음이 있는 곳에서 더 명확하게 나타나며, 뇌가 과도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어 기억력과 인지 기능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 데이터를 분석한 2023년 연구에서는 청력 역치가 11~25㏈인 아동이 독해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상 청력 아동보다 독해 점수가 하위 25% 미만일 확률이 약 3배 높았으며, 수학 문제 해결과 단기 기억력에서도 열등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대학 연구팀이 2020년 초등학생 3천 명을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도 경미한 청력 손실 아동은 성적이 낮고 주의력 결핍과 사회적 문제를 경험할 가능성이 컸다. 청력 역치가 1㏈ 상승할 때마다 성적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하락했고, 잡음 환경에서 음성을 구별하지 못할수록 학습 성취와의 연관성이 강했다.

한편, 국내 연구진이 식습관과 청력 손실의 상관관계를 규명했다. 정다정 경북대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연구진이 영국 바이오뱅크 대규모 인구 코호트 자료를 활용해 40~69세 성인 49만여 명을 분석한 결과, 식사 시 소금을 '항상' 첨가하는 사람이 '거의 하지 않는' 사람보다 난청 발생 위험이 23% 더 높았다.

연구진은 식사 중 소금 첨가 빈도를 4단계로 구분해 난청 발생 빈도를 분석했다. 분석 결과 1만9천188명(3.9%)에게서 난청이 발생했는데, 소금 첨가 빈도가 높을수록 난청 발생률이 증가했다. 소금이 난청에 미치는 영향은 60세 이하 젊은 연령층, 남성, 당뇨병이나 고혈압이 없는 사람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연구진의 매개 효과 분석 결과, 소금 섭취와 난청 발생 사이에는 '만성 염증'이 중요한 매개 역할을 했다. 소금을 많이 섭취하면 체내에 만성 염증이 발생하고, 이 염증이 청각세포와 미세혈관에 악영향을 줘 난청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반면 소금이 혈압을 상승시켜 난청을 유발한다는 가설은 예상보다 제한적인 영향만 보였다.

국내 청소년들의 청력 손실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인제대 해운대백병원과 고려대 구로병원 연구팀이 2010~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한 12~19세 1천845명을 분석한 결과, 8.56%가 한쪽 귀, 1.03%가 양쪽 귀에 난청이 있었다. 특히 고주파 난청 비율이 높았다. 조사 대상 중 32.74%는 한쪽 귀, 5.53%는 양쪽 귀에서 고주파 난청이 확인됐다.

2021년 인제대 빅데이터융합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평균 80분 이상 소음 환경에서 이어폰을 사용하는 청소년 그룹의 소음성 난청 유병률은 22.6%였다. 그러나 본인이 청력 저하를 자각한 비율은 16.8%에 불과했다. 난청이 있어도 스스로 인식하지 못한 경우가 5.8%였다.

어린 난청 환자가 증가하는 주요 원인은 디지털 기기 사용의 급증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12~35세 인구 중 25%가 개인청취기 사용 습관으로, 50%는 시끄러운 환경 노출로 청력 손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피시방, 군 복무, 스마트폰 사용 등으로 청년층의 소음 노출 요인이 높다.

장 교수는 "게임 시 평균 소음이 85~90㏈에 달하며, 슈팅 게임에서는 순간적으로 제트기 수준(179㏈)의 소음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WHO 기준에 따르면, 소음 강도 80㏈ 기준으로 성인의 주당 노출 허용 시간은 40시간이다. 여기에서 3㏈ 높아질 때마다 노출 허용 시간은 절반으로 줄어든다.

청력이 청소년기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생애주기 검사 체계는 아직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못했다. 장 교수는 "현재 전 국민 대상 청각 선별검사는 신생아기밖에 없으며, 그 이후 생애 주기에서는 검사 체계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청력은 한 번 손상되면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 감각으로, 조기 발견과 예방 교육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어폰 사용은 최대 음량의 60% 이하, 하루 60분 이내로 제한하고 시끄러운 환경에서는 귀마개 등으로 스스로 보호하는 습관을 교육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