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유산 전문가로서 40여 년간 품어온 숙원사업을 완성한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한국미술의 전 과정을 담은 압축판 저서를 세상에 내놓았다.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진행된 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그는 "생을 마감하기 전에 반드시 완성해야 할 과업이라는 각오로 집필에 임했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번에 공개된 '모두를 위한 한국미술사'와 '외국인을 위한 한국미술사'는 그가 2010년부터 13년에 걸쳐 완성한 6권짜리 강의 시리즈를 한 권으로 응축한 결과물이다. 총 2600페이지에 달했던 방대한 분량을 660여 쪽으로 압축하면서도 핵심 내용은 모두 담아냈다는 평가다.
구석기 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우리나라 미술의 발전 과정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일반판과 달리, 외국인 독자를 고려한 버전은 건축·조각·회화·공예 등 장르별 접근법을 택했다. 유 관장은 "우리 역사와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서술 방식을 달리했다"고 설명했다.
1983년 30대 젊은 학자였던 시절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신촌 지역의 문화공간에서 열린 공개강좌였다. 당초 20명으로 시작된 '젊은이를 위한 한국미술사' 강연은 입소문을 타고 참석자가 100명을 넘어서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여러 장소를 옮겨가며 10년간 지속된 강의 경험이 이번 저작의 토대가 되었다.
특히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한류 열풍의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국외 수요에 주목한 점이 눈에 띈다. 유 관장은 "K-컬처의 역사적 뿌리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궁금해하는 세계인들을 위한 입문서가 절실했다"며 출간 동기를 밝혔다.
책의 편집 과정에서도 그만의 철학이 드러난다. 본문 작성 완료 후 1년 가까운 시간을 투자해 글과 도판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세심하게 조율했다. "책상머리에서 밑줄 그어가며 학습하는 게 아니라 소파에 편안히 기대어 읽을 수 있는 책을 지향했다"며 "무거운 벽돌책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종이 두께까지 신경 썼다"고 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이라는 공직을 수행하면서 저술 활동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그는 뉴욕현대미술관의 알프레드 바 전 관장, 영국 내셔널갤러리의 케네스 클라크 관장 등 해외 주요 박물관 수장들의 저술 활동 사례를 들며 "박물관 관장과 큐레이터의 학술 역량은 해당 기관의 권위와 격조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라고 강조했다.
국제적으로 한국미술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냈다. 세계적인 미술사 총서인 'World of Art' 시리즈에서 한국 관련 내용이 미비한 점을 지적하며 "이제는 우리 미술을 세계에 제대로 알릴 때가 되었다"고 역설했다.
향후 '외국인을 위한 한국미술사'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다국어 번역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또한 내년에는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등 조선시대 대표 화가들을 다룬 '화인열전'의 전면 개정판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