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의 비핵화 목표 철회를 전제로 한 북미 대화 의사를 표명한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 관련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아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 23일 뉴욕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총회 연설에서 약 1시간 동안 발언했으나 북핵 문제나 한반도 정세에 대해서는 완전히 침묵을 지켰다. 이는 집권 1기 시절 4차례 유엔총회 연설 중 3차례에서 북한을 중요하게 다뤘던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개인적으로 현 미국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있다"면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 집착을 버리고 현실 인정에 토대해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원한다면 우리 역시 미국과 대좌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동시에 "우리에게 비핵화란 절대로, 절대로 있을 수 없다"며 핵 포기 불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이란을 겨냥해 "세계 최고의 테러 후원국이 가장 위험한 무기를 보유하도록 방치할 수 없다"고 언급했지만,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서는 단 한 차례도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외교 성과를 부각시키며 "7개 전쟁을 종식시켰다"고 자평하는 데 치중했다.
미국 국무부 고위 당국자는 로이터통신에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여전히 미국의 정책"이라면서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백악관 관계자 역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 김 위원장과 지속적으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논평했다.
한편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린 한미일 3국 외교장관 회의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이날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정상화·비핵화)를 제시하며 3단계 비핵화 방안을 재차 강조했다.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침묵을 북미 대화 재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신중한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다음달 말 경주에서 개최되는 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할 예정인 상황에서, 2019년 판문점 깜짝 회동과 같은 돌발적 만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비핵화 포기를 대화 전제조건으로 제시한 만큼, 실질적 북미 협상이 성사되더라도 사실상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비핵화가 아닌 핵 동결 수준에서 합의가 이뤄질 경우 국제사회의 비핵화 원칙이 흔들릴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