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 최빈국 동티모르에서 국회의원들의 신형 SUV 구매 계획이 알려지면서 청년층의 격렬한 항의시위가 벌어졌고, 결국 의회가 전직 의원 연금제도 폐지까지 결정하게 됐다.
18일 현지시간 외신 보도에 따르면 동티모르 의회는 전날 시위대 대표단과의 협의를 거쳐 전직 국회의원에게 급여 수준의 연금을 평생 지급해온 2006년 법률을 무효화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수도 딜리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생시위 이후 새 차량 지급 계획을 철회한 데 이어진 추가 조치였다.
사태의 발단은 의회가 현직 의원 65명 전원에게 도요타 프라도 SUV를 제공하기 위해 편성한 420만 달러 예산이었다. 인구 40% 이상이 빈곤선 아래 생활하는 상황에서 이같은 호화 지출 계획이 공개되자 대학생 2000여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지난 15일부터 나흘간 이어진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정부 소유 차량을 불태우고 공공건물을 파손했으며, 진압 경찰과 투석전을 벌였다. 경찰이 최루탄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수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 대표 크리스토바오 마토(27세)는 "정부가 약속을 어기면 훨씬 대규모 집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을 유지했다. 다른 참가자 트리니토 가이오는 "이미 차량이 운송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린다"며 "국민 혈세가 잘못된 곳에 사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러 나왔다"고 말했다.
인구 141만 명의 동티모르는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국가 중 하나로, 고갈되고 있는 석유·가스 자원에 의존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이 3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정치인들의 사치스러운 특혜는 분노의 뇌관이 됐다.
이번 동티모르 사태는 최근 아시아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반특권 시위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전달 국회의원 주택수당 지급에 반발한 시위로 10명이 사망했고, 네팔에서는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72명이 목숨을 잃으며 총리 교체까지 이뤄졌다. 필리핀에서도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대형 집회가 21일 예정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팬데믹 이후 누적된 경제 어려움과 정치권 부패에 대한 Z세대의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다고 분석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다른 국가 청년들의 생활상을 접하며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점도 집단행동의 촉매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블룸버그는 "아시아의 젊은 세대가 불공정과 부정의를 더 이상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며, SNS를 매개로 변화를 이끄는 새로운 정치 주체로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