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제80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상 중 첫 번째 연설자로 나선 룰라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반민주적 세력들이 정부 기관을 억압하고 자유를 질식시키려 한다"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연설에서 룰라 대통령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브라질은 독재 야망을 품은 자들과 그 지지 세력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면서 "우리나라의 민주적 체제와 국가 주권은 결코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가치"라고 단언했다. 이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쿠데타 모의 사건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브라질 연방대법원은 지난 11일 정권 전복 음모, 무장 범죄 조직 구성, 중상해, 문화유산 파괴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게 징역 27년 3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남미의 트럼프'로 불리며 트럼프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온 보우소나루를 둘러싼 이번 재판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탄압"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재판을 계기로 브라질 상품에 50% 수입관세를 부과하고, 재판을 주도한 알렉산드레 드 모라에스 연방대법관에 대한 포괄적 제재 조치를 단행해 내정개입 논란을 야기했다. 연설 순서상 트럼프 대통령 직전에 단상에 오른 룰라 대통령은 사실상 미국을 겨냥해 "우리 국가기관과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조치들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과거 패권 시대를 그리워하는 극우 진영의 후원을 받는 사법권 독립성에 대한 침해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의 압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러한 발언은 트럼프 행정부가 보우소나루 재판 담당 판사의 배우자를 새로운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받았다.
양국 관계가 사상 최악으로 치달은 상황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브라질의 "언론 통제, 정치적 탄압, 사법 부패" 문제를 거론하며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유엔 본회의장 입장 시 브라질 정상과 마주쳤다"며 "서로 눈을 맞추고 다음 주 만남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룰라 대통령과의 20초간 만남을 언급하며 "매우 훌륭한 인상을 받았고 좋은 화학적 반응을 느꼈다"고 농담 섞인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브라질 당국은 양국 지도자 간 회담 추진 가능성을 인정했으나, 대면 또는 전화 통화 여부는 명확히 하지 않았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한편 룰라 대통령은 연설에서 기후 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올해 11월 브라질 벨렝에서 개최되는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 참석을 각국 정상들에게 당부했다. 유엔총회 일반토론에서 브라질이 첫 연설을 맡는 전통은 과거 다른 국가들이 선두 발언을 기피했던 상황에서 브라질이 자원하면서 시작된 관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