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각) 6년 만에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뉴욕 유엔본부를 찾은 가운데 잇따른 기계 결함으로 당황스러운 상황을 겪었다.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총회장으로 향하던 트럼프는 승강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기계가 갑작스럽게 정지하는 바람에 두 사람 모두 계단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불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연설을 시작하려던 트럼프는 자막 송출 장비가 먹통이 되면서 준비된 원고를 보며 발언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는 "자막기 없이 말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기계가 움직이지 않으니까"라며 "이렇게 하면 오히려 가슴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진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여유를 보였다. 이어 "물론 장비 관리 담당자는 상당한 곤란에 빠졌을 것"이라고 덧붙여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트럼프의 연설이 이어지면서 이 같은 농담은 날카로운 비판의 전주곡임이 드러났다. 그는 "7차례 전쟁을 종료시켰지만 유엔에서는 협력 제안 연락조차 받지 못했다"며 "내가 이곳에서 얻은 것이라면 중간에 서버린 승강기와 작동불능 자막기뿐"이라고 꼬집었다.
과거 건설업계에 몸담았던 경험을 거론한 트럼프는 "유엔본부 전체를 5억 달러로 새로 지어주겠다고 제안했으나 거절당했다"며 "대리석 바닥재까지 깔아주겠다고 했는데 그들은 다른 길을 택했고 훨씬 많은 비용을 치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고 설계 개념 자체가 잘못됐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고 혹평했다.
트럼프는 "솔직히 건물 상태를 보고 승강기 고장을 겪어보니 수년이 지난 지금도 공사를 마무리하지 못한 것 같다"며 "영부인의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면 넘어졌을 수도 있었다"고 비아냥거렸다.
권장 시간인 15분을 훌쩍 넘어 거의 1시간에 달한 연설에서 트럼프는 "유엔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막강한 잠재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에 근접하지도 못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그는 "강경한 문구의 서한을 발송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며 "허울뿐인 말로는 분쟁을 해결할 수 없고 실제 행동만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통령 부부가 승강기를 이용할 때 누군가 의도적으로 가동을 중지시켰다면 즉각 파면하고 수사해야 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중앙 제어시스템 기록 확인 결과 승강기 상부의 안전 장치가 작동해 멈춘 것"이라며 "촬영진이 역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의도치 않게 안전 기능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명했다.